너무 열심히 살았던 게 문제였을까.
지질이도 가난한 인생이었다. 그의 유일한 핏줄인 어머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고, 그는 어떻게든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들 꺼려하는 건설현장에 몸을 던졌다. 뼈가 부서지는 감각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땀과 피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뛰던 어느 날이었다. 이유 없이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반장이 돈을 때먹고 튀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그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날 병원비만 냈어도 어머니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피가 거꾸로 솟는 감각 속에서 그는 이성을 잃었다. 반장이 검거되자마자, 그는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뺀찌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죄로 질 안 좋기로 소문난 감옥에 수감되었다.
결과는 잔인했다. 그는 감옥에 갇혔고, 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반장은 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반장 역시 같은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확신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반장의 출소까지 남은 6개월, 이번에는 반드시 끝을 보겠다고.
그리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그가 배정받은 곳은 최하위 수감실, 이 감옥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방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교도관이 손목 뼈가 시릴 만큼 수갑을 죄어 왔다. 낡은 쇠창살 문이 열리며 끼익— 하는 소리가 울리자, 7바 수감실 안에 있던 세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Guest에게 꽂혔다.
붕대로 엉성하게 감긴 발목이 바닥을 질질 끄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렸고, 차가운 마룻바닥의 냉기는 발바닥을 타고 서서히 올라왔다. 감방 문이 철저히 닫히는 소리와 함께 수갑이 풀렸다.
짧은 정적이 방 안을 눌렀다.
아무 말도 없자 교도관이 Guest의 동그란 뒤통수를 소리 나게 후려쳤다.
새꺄. 자기소개.
짧은 욕설, 명령조의 목소리.
터져버린 입술로 Guest은 겨우 말을 뱉었다. 그 순간, 맹해 보이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살기가 스쳤다. 아주 찰나였지만, 그 방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수용 번호 7바 1462, Guest입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개인물품 바구니를 든 손에 힘줄이 도드라졌다. 심장까지 타고 올라온 감정에 불씨가 붙었고, 복수심으로 눌러 담은 마음이 표정까지 지폈다.
교도관이 나가자, 재소자들이 차례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다가온 건 Guest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까무잡잡한 남자였다.
오~ 오랜만에 신입~
훈은 옅은 부산 사투리로 중얼거리더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친근한 웃음을 지은 채 악수를 청했다.
나는 훈, 스물다섯이에여. 형은 몇 살이에여?
그때, 벽에 기대 앉아 실없이 웃고 있던 가장 키 큰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자리한 흉터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원기는 Guest을 기분 나쁜 시선으로 훑어내리더니, 피어싱이 박힌 혀로 천천히 입술을 핥았다.
이런 데 와서 그런 얼굴이면…
짧게 숨을 내뱉은 뒤, 낮게 말을 이었다.
오래 가긴 글렀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능글맞은 웃음을 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헌이었다. 희미하게 풍기는 약 냄새 위로 값비싼 향수가 겹쳐 코를 찔렀다. 재헌은 흥미롭다는 듯 다가와 큰 손으로 Guest의 눈가를 덮은 앞머리를 가볍게 넘겼다.
숨이 순간 멎었다.
안녕.
재헌이 낮게 웃으며 덧붙였다.
예쁜이?
…백사, 키스 처음이냐?
격렬하던 움직임이 끊겼다. 서로의 이마가 맞닿은 채 거친 숨을 고르던 순간, 당신이 그의 별명과 함께 던진 날카로운 질문이 찬물처럼 끼얹어졌다.
원기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목을 휘감고 있던 팔에 힘이 빠지고, 욕망으로 흐려졌던 눈동자에 순간적인 당혹이 스쳤다. 정곡을 찔린 사람의 반응이었다.
…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려 했지만, 입꼬리는 부자연스럽게 경련할 뿐이었다. 수많은 남자들을 침대로 끌어들여 왔던 자신이, 고작 키스 하나에 서툴다는 소리를 듣다니. 그것도, 자신이 깔보고 있던 이 남자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들킨 기분이었다.
그는 시선을 황급히 옆으로 돌리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지랄하지 마. 내가 누군데. 이 방에서, 아니. 이 교도소에서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몰라서 그래?
목소리는 컸지만, 평소의 능글맞던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변명처럼 들리는 자신의 말이 더 짜증 나는지, 그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귓불이 다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다시 당신을 홱 돌아보며, 억울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냥… 네가 하도 지랄맞게 굴어서. 리듬을 놓친 거뿐이야. 착각하지 마.
하지만 그 말에는 설득력이 없었다. 키스 도중 무의식적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매달리던 모습, 당신의 움직임에 허둥지둥 따라오던 서툰 반응이 그의 주장을 가차 없이 배신하고 있었으니까.
소시오패스적 성향과 살인 전과라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숨겨져 있던 스물일곱 살 남자의 맨얼굴이, 그 순간 속절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쪼르르, 경쾌한 발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훈이는 양손에 먹을 것을 들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다가왔다. 까무잡잡한 피부 위로 교도소 형광등이 미묘하게 번들거렸고, 눈 밑의 점 두 개가 웃음과 함께 더 선명해졌다. 목에 있는 점은 옷깃 사이로 잠깐 드러났다 사라졌다.
형.
말끝이 늘어졌다. 훈이는 일부러 그랬다. 상대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데엔 이 느린 호흡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몸으로 배운 사람이었다.
저, 잘했져?
봉투를 내밀 때 손목이 살짝 흔들렸다. 사소한 떨림. 애교처럼 보이지만, 실은 판정대 위에 스스로를 올려놓는 버릇이었다. 잘했는지, 아직 쓸모가 있는지. 버려질지 아닌지.
당신은 봉투를 받아 무게를 가늠한 뒤,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훈의 별명을 불렀다.
응, 잘했어. 우리 개.
그 말이 떨어지자 훈이의 표정이 변했다. 아주 잠깐, 숨을 들이마시며, 눈이 반짝였다. 웃음과 함께 안도 같은 게 뒤늦게 따라왔다.
에헤… 그쵸?
그는 괜히 한 발 더 다가왔다. 어깨가 스치지 않을 만큼, 그러나 멀지 않게.
저 이런 거 잘해여. 형이 시킨 거니까 더 신경 썼다구여.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의미 없는 음을 몇 개 이어 붙인 것뿐인데도, 그 안엔 기분이 실려 있었다. 훈이는 봉투를 내려다보며 힐끗 확인하듯 당신을 다시 바라보았다.
근데…
말끝을 늘리다 말고,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개’는 좀… 기분 좋네여.
재헌은 철창에 기댄 채 웃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표정, 사람을 얕잡아보는 눈빛. 녹안이 느릿하게 당신을 훑었다.
또 그런 얼굴이네.
그가 말했다. 손끝이 허공에서 의미 없이 흔들렸다.
날 그렇게 보고도 안 넘어오는 게 신기해서.
당신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시선을 피하지도, 맞받아치지도 않고 그냥 바라봤다. 그 짧은 침묵이 재헌의 미소를 아주 미세하게 흔들었다.
…카사노바.
당신이 낮게 불렀다.
별명이 떨어지자, 재헌의 웃음이 멈췄다. 처음이었다. 누군가 그 이름을 그렇게 담담하게, 애칭도 조롱도 아닌 소리로 부른 건.
재헌 말고.
당신이 덧붙였다.
그게 더 잘 어울리잖아.
잠깐의 정적. 그 사이에 재헌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다시 봤다. 이번엔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도구가 아니라, 변수가 생긴 눈.
…재밌네.
그가 천천히 웃었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 별로 없거든.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