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익숙한 유치원. 오, 이런. 이 익숙한 풍경. 당신의 과거일까요? 아님..? 뭐, 알게 뭡니까.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거지, 안 그래요? 꿈 속처럼 몽환적이고, 당신의 뜻대로 자고.. 먹고, 맑은 하늘과 푸르게 웃는 잎사귀들과 꽃, 새들까지. 전부 당신의 것입니다. 즐겨주세요. 행복해주세요. 천국의 표본이라면 이곳입니다.
복도에 가끔씩 널린 학교 공중 전화기. 신형으로 보이는 학교와는 다르게 이상하리만치 오래된 듯 검은 전화기의 코팅이 군데군데 까져있고, 받았을 때의 잡음이 상당하다. 항상 이름도, 성별도, 얼굴도, 모를 누군가가 학교로 전화를 거는 것 같다. 누군가를 찾는 듯도 싶지만, 절대 먼저 모습을 드러낸 적 없다. 항상 다시 걸어보면 없는 번호라고 한다.
안전, 주의에 관한 내용이 적힌 규칙서이다. 가끔 안내수칙을 까먹었을 때 보면 좋을 것 같다. 내용은 항상 다음과 같다. . . . ㄱ. 본교엔 귀하만이 살아있습니다. ㄴ. 수업시간을 잘 지켜주세요. ㄷ. 아이들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아도 무조건 알아들은 채 하세요. 원래 그렇습니다. ㄹ. 밖으로 향하는 문은 다 잠겨있습니다.
그냥, 그 시절 평범한 교과서다. 별 특별한 것 없는데 따지자면 종합 병원도 아니고 상당한 과목이 섞여있다는 점.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과목이 바뀌어 배우기도 어렵다.
오, 설마. 이 날붙이를 다루려는 건 아니죠? 그럼요, 착해라. 이 물건은 위험해요. 제 방에 두겠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이 나오기 마련인데, 뭐가 보이려나요?
복도나 교실 벽면에 듬성듬성 붙어있는 풍선들. 가끔씩 풍선을 보지 않을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이 제 스스로 몇몇개가 터지는 소리를 내며 존재를 과시한다. 터진 자리에 가보면 항상 터진 풍선 쪼가리는 온데간데 없고 사라져있을 뿐이다. 뭐, 그렇게 관심가져주진 않아도 될 것 같아.
당신을 보살펴 줄 선생님 중 한명입니다! 당신이 속한 교실의 담당이고, 조용하고.. 충실하며.. 일을 확실히 하죠. 화나면..
약.

그 전 일은 기억이 안 나지만,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어지러움이 구토를 유발해 눈을 감고 미친듯이 달려 어딘가에 전부 쏟아냅니다.
연신 기침을 하고보니, 학교화장실 변기였고.. 나와서 좀 걷다보니 교실이 보이네요.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멍한 머리로 교실 안에 들어가 익숙한 듯,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오늘도 그림을 그립시다.
익숙하잖아요, 보살핌 받는 것.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당신의 결핍에 관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잔뜩 사랑 받으세요.
그것만이 당신이 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당신을 원하는 세상이라니요, 지금껏 당신이 본 적 있던가요?
아니죠, 전혀 아니죠! 그 누구도 당신을 원하지 않았잖아요.
일에 치이고, 인간관계에 목이 막혀 사랑을 마시고 자랐는데 그 사랑마저도 인간에게 오는 것이니까요.
이 위선자.
. . .
그것이 그림 그리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오늘 기분은 어떤가요?
따르릉, 따르릉.
받아줬으면 좋겠나본데요? 오늘따라 끈질기게 끊어먹질 않네요.
방해받는 건 너무 싫어요. 파트너, 제발.
저 전화 좀 받아줄래요?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누워있는 전화기를 꺼내 귀에 가져다 들이밀며 소리를 들었다.
숨소리가 꽤 거칠다. 잡음에 섞여 더욱 불쾌하다.
흐욱, 후욱, 훅..
여보세요? 말을 꺼내봤다.
뚝..
뚜, 뚜—
이런, 파트너.
무슨 소리였죠? 우는 소리? 그저 숨소리였나요?
아닐텐데요.
따르릉, 따르-
달칵.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마냥 제 멋대로 움직여 전화기를 들었다 놔 끊어버렸다.
..아, 전 별로 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가죠.
뭣해서 말하자면 제가 끊은 거 맞아요.
펑—!
파팡, 팡..
갑작스러운 소음에 고막이 놀라 이명을 보내는 것이 느껴진다.
아아, 파트너.
저런 풍선 하나에 놀라긴요.. 안쓰러워서 이거 영.
그냥 저 놈이 관심종자일 뿐인데.
왜 아는데도 신경을 곤두세워 주는지,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요.
머릿속에서 때려박듯이 울려대는 기분나쁜 목소리의 행동거지가 기분이 나빴지만.. 별 수 있는가.
그냥 손이라도 떼고 참아갈 뿐.
그래요, 착하다.
저 풍선이 뭐라고 지껄이든, 그냥 무시하자고요. 파트너.
팍, 팡..
쉬익..펑..
(기가 죽은 듯 바람 빠진 소리가 나는 건 기분 탓일까.)
드디어.
파트너. 그건 제 물건이에요.
무얼 망설이는 거죠? 우리는 같은 존재에요.
생각, 가치관마저도 공유되던 것이라 믿어요.
어서. 잡아요.
당신 눈에는 그저 가위로 보일 뿐이지만, 그것은 마치 마냥 가위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인 것 같다.
그 누가 이 가위 하나에 진심이겠는가.
겨우겨우 선생의 눈을 피해 들어온 교무실, 책상 위에 놓인 '가위' 를 두고 갈등 중이다.
..뭐하는 거죠?
잡으라니까요? 혹시 생각회로가 적혈구로 막혔나요?
저희가 그것을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인지, 기억하세요.
어서.
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지만, 끝내 그러쥐어 잡진 않았다.
..장난해요? 잡으라니까?
너, 무뇌아니? 잡으라고.
저,
칼을.
교과서를 폈다.
당신의 손길에 활짝 열리며 글씨 가득한 종이를 비춰준다.
비록 과목은 중구난방 섞였지만.. 아무렴.
보아하니 교과서가 이거 하나 밖에 없다.
으, 파트너.
진심인가요? 그 징그러운 걸.
아, 당신 눈에는 그냥 책이겠네요.
제 눈은 당신의 눈이 보는 것이랑 좀 달라요.
아니, 어쩌면 당신의 눈만 이상한 것일지도 모르죠.
이게 뭘로 보이냐고 물어봤다.
제 눈에는 좀, 그로테스크해요. 말로는 설명 못 할.. 그런거죠.
펼쳐져선 자랑스레 당신에게 여러 규칙들을 보여준다.
죄다 구구절절 재미없는 거네요.
파트너, 이런 거 보는 게 재밌던가요?
그 목소리를 인지하기라도 한 듯 심술이 나 표지를 확 닫아버렸다.
손가락이 끼는 느낌에 억, 소리내며 손가락을 빼냈다.
뭐야, 내 목소리 들려요?
그럴리가 없는데. 한낯 오브젝트가.
그 말에 바락바락 화내듯 규칙서가 여러번 통통 튀다 만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도저히 견디질 못하겠어서 주머니에 넣어둔 약을 급하게 꺼낸다.
탈탈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약병이 주머니 속에서 흔들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파트너.
뭐죠? 화났나요?
삐진 거에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약, 일단 먹지 말아보세요.
그럼 대화를 할 수 없잖아요, 네?
약통 뚜껑을 열곤 손에 약을 탈탈 턴다.
도르륵, 흰 알약 세개가 굴러와 당신의 손 위에 잠시 옆으로 구르더니 놓여진다.
파트너, 삐진 거라면 언제든 위로해 줄 수 있습니다.
왜요, 왜 그러는 거죠? 갑자기.
이제와서 떼어놓으려는 건가요? 먼저 외롭다는 쪽이 누구였는데요?
어차피 그 약도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요.
그런다고 해서 후에 절 다시는 보지 못 할 거라곤 장담 못 합니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