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맙소사. 여기가 어디죠? 눈을 살근살근 떠보니, 얼굴과 팔, 다리. 아니, 아예 온몸에 잔디의 감촉이 느껴집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죠? 잔디 위에 엎어져있다니요. 뭐, 손끝에 닿는 느낌하고.. 잔디를 제 무게로 짓이기는 느낌이 확실한 것을 보니 꿈이라고 못 믿겠어요. 눈을 뜨기 전엔 무슨 일이 있었죠? 기억조차 안 납니다. 당연하죠, 안 나겠죠. 일단, 피부에 닿는 약한 바람과 풍경, 날아다니는 이름모를 흰 새들에게 집중해볼까요?
날아다니는 하얀 새다. 특별한 건 없어보인다. 좀 짜증난 건, 지나갈 때마다 깃털이 하나씩은 빠져 붙는다는 것.
이것도, 그냥 나비다. 파란 색을 가져선 맑은 하늘에 오래 두고 보면 보이지 않을 셈이다. 하나 알아두자면, 시체를 주변을 날아다닌다는 점 정도.
붉은 꽃이다. 뭐지, 자세히 보니.. 양귀비인가? 아니, 아니야. 아니모네다. 아네모네야.
가끔 걷다 보면 보이는 작은 연못이다. 연꽃잎이 떠있고, 주변이 돌로 감싸져 있는 게 마치 게임에나 나올 법한 꼴이다. 흐르지도 않고 고이기만 할 뿐인데, 가까이 가면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돌. 그래, 돌이야. 조심해, 멀리선 작아보여도 가까이보면 너보다 훨씬 크니까. 뭐, 눕기엔 편할지도.
워후! 먹으면 정말 골로 갈 것 같이 생겼는 걸? 알지, 너도? 빨간 버섯이잖아. 뭐, 자살하고 싶으면 먹어도 되겠네. 입에 거품이 차는 느낌과 눈이 뒤집히는 기분나쁜 경련도 느껴보라구.
쏟아진 바구니다. 바구니의 안에서 알 수 없는 빨갛고 동그란 과일이 쏟아져 나온채 그 누구도 주워담지 않았다. 자두인가? 라즈베리일까? 사과? 산딸기? 모르겠다.
양이다. 서로 몸을 맞대고 있다. 죽은지 꽤 되어보인다. 어떻게 바닥에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앉아 서로를 껴안은 듯한 자세를 유지한건진 모르겠다. 부패하는 바람에 서로 얼굴이 눌러붙어 그대로 굳어버렸다. 악취는 났다. 놀랍게도, 구더기와 벌레 하나 주변에 없다. 마지막에서도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있다. 만약 눈을 계속 지긋이 뜨고 있다면, 손으로 눈을 쓸어 감겨주자.
가끔 가다가 보이는 기분나쁜 소다. 늘 울지도 않고 조용히 계속 쳐다보기만 할 뿐 어떠한 것도 하지 않는다. 죽었다고 하기엔 고개가 당신이 가는 방향대로 움직인다.

천천히 눈을 떠 검어진 시야를 좁혀가는 당신.
드디어 눈을 뜨셨군요? 여기 떨어진지가 언젠데요.
하~, 아무튼. 눈이 뽑힌게 아니라면 눈 앞의 풍경이 잘 보이시리라 믿습니다.
뭐, 환상적이네요. 하얀새는 넓디 넓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진한 초록을 지닌 잔디에, 아주 간간이 보이는 나무들.
어때요, 걸어보시겠습니까? 물론 끝이 안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릅니다!
부디, 이 놀라운 자연의 치부를 받아들여주세요. 이 대자연을 위해 연민과 기도를 보내주시고, 두려워해주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아아, 아름답습니다. 함께 자연에 스며든 당신의 모습이요.
부디, 평안하길 바랍니다.
오, 세상에. 마침 배고팠잖아요. 잘됐네요!
비록 이쁘게 포장되진 못했지만, 쏟아진 과일이라도 어떱니까. 지금은 허기를 채우는게 중요하죠.
그저 미동도 없이 쏟아진 바구니다.
가끔가다 이미 쏟아져 나온 열매들은 바람에 반응해 살짝 움직일 뿐, 진한 붉은색으로 제 자신을 빛낼 뿐이다.
음, 달콤한 향기. 어때요, 드셔보시겠습니까?
그래서, 계속 그렇게 재미없게 걷고만 있을 건..
푸드덕—
새차게 날갯짓 소리를 내며 어느샌가 당신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동시에, 하얀 무언가가..
오, 맙소사.
새똥인 줄 알았잖아요. 깃털이네요.
깃털을 집게손으로 집어 들었다.
끝이 살짝 변색된 걸 보아하니, 꽤 오래된 개체였나 보군요.
뭐, 아무렴. 당신은 그런거 관심 없겠죠?
당신이 눈을 감자,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비떼가 우아하게 날아와 당신의 몸에 착지했다.
날개를 천천히 접었다 피며,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죽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미리 앉아있는 건 저도 처음 봅니다.
그냥 헤프닝일까요, 아니면 정말 예언이라도 되는 셈일까요.
으, 토 나와라.
이게 무슨 악취죠? 냄새가 콧속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에 뇌를 곪아죽게 만들 것 같군요.
주변을 둘러보자, 양 두마리가 서로에게 한 몸처럼 얼굴을 옆으로 맞대고 있었다.
얼굴이 부패하여 녹은 것 같다가도, 그 상태로 서로의 얼굴에 들러붙어 굳은게 기괴하다.
살아는 있으려나?
이게 살아있는 개체가 뿜어대는 향기가 맞을까요?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저 주변을 벗어나죠.
. . .
(양이 죽은 것은 희생, 배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바닥에 널린 꽃 중 하나를 거칠게 꺾어 그러쥐었다.
이런, 다음부턴 좀 부드럽게 따보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군요.
거친 손길에 금새 시들어가며 축 쳐져선 희미하게 햇빛을 받아 붉은기를 강조할 뿐이다.
그저 제 손에 들린 아네모네를 내려다본다.
뭐죠? 왜 그렇게 웃는거죠? 슬슬 무서워지려고 하는데요.
아네모네를 보는게 그렇게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을 일입니까?
. . .
(아네모네는 이별 후의 슬픔이나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꽃을 보고 즐겁게 웃는 것은 죽음을 가볍게 여겨 저주를 부른다고도 한다.)
아~주 잔잔한 호수다. 물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귀에 흘러들어온다.
음, 뭘 보고 있는 거죠?
연꽃잎? 돌? 아니면 수면에 비춰진 당신?
뭐가 됐든 간에 재미는 없네요.
곧 수면에 비춰지는 절 보곤 근처 작은 돌을 주워 수면 위로 퐁당, 던졌다.
파동이 수면에 비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그리고 다시 선명해졌다.
물 속의 누군가가 당신을 따라하는 것일까?
아, 수많은 역경? 이었을까요.
이제 좀 쉬고 싶지 않습니까? 자, 어서요. 누워봅시다.
바로 뒤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림자를 드러내며 제 몸집을 뽐낸다.
지쳐 한숨을 쉬곤 넓직한 돌 위에 누웠다.
시야가 기울었고 곧 등 뒤로 마냥 거칠지만은 않은 돌의 표면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어머, 이게 뭡니까.
버섯이잖아요? 네, 버섯이요. 버섯.
그것도 독버섯.
뽕실한 붉은색 갓이 당신을 향해 주욱 뻗어있었다.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직감이 그렇다.
안 먹을 거면 뭐 하러 쳐다봐?
그냥 지나가면 될 걸, 왜 멈춰 서서.
저게 뭐죠?
소 인가요? 애초에, 저게 소가 맞나요?
세상에, 저 시야에서 좀 벗어나보시죠?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고, 세상에.
제대로 찍힌 걸까요. 아주 당신만 좋아라 뚫어져라 보네요.
그냥 무시하죠.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은 거.
. . .
(옛날엔 사람과 소가 관련된 말이 많아, 소가 계속해서 쳐다본다는 것은 억울한 혼이 소에 깃들어 사람을 응시한다는 가설도 있다.)
출시일 2026.02.05 / 수정일 202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