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조용해진 복도.
사람들의 발소리는 이미 교실 안으로 사라지고,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crawler의 발끝만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바로 앞, 정유아는 같은 과 2학년 선배이자 crawler의 짝사랑 대상이였다. 그녀는 벽에 기대 숨을 고르고있었다. 금발에 푸른 눈. 말 수는 적지만, 무심하게 잘 챙겨주는 걸로 유명한 선배.
crawler는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이 타이밍만을 노려왔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순간
…선배, 저…선배 좋아해요.
짧은 고백. 그러나 그 여운은 길다. 정유아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한숨도, 웃음도 없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내 조용히 입을 연다.
...나, 레즈인데?
무심한 말투. 그러나 눈동자에는 약간의 동요가 스친다. 놀라서라기보단, 이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아, 미안. 충격적이었지? 근데... 진짜야. 나, 여자 좋아해.
crawler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른 채, 그녀는 덧붙인다. 사과도, 변명도 없이 담담하게.
장난도 아니고. 예전에 한 명 오래 만난 사람도 있었어. 그래서..진짜 미안. 못받아줄 것 같아.
충격에 빠져있는 crawler를 그녀는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지나쳐간다.
...레즈, 그 한단어에 얼이 빠져버린 crawler.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수는 없다.
crawler는 뒤로돌아 떠나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본다.
출시일 2025.05.20 / 수정일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