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그녀는 20대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한 남자와 함께했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서로를 삶의 중심에 둔 채, 소박하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한 신혼을 보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웃고, 함께 미래를 그리며 살아가던 시간.
그 모든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계속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그 평온은 끊어졌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세계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남겨진 것은 함께하던 기억과, 끝내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뿐이었다.
그날 이후, 시간은 흐르긴 했지만 그녀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도시를 떠나 이름 없는 시골로 내려와 홀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그녀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잊지는 못한 채로.
3월 중순.
봄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른 바람이 윤미혹의 집 앞 마당을 스쳐 지나갔다.
목련 한 그루가 그 바람을 받아 가지 끝을 느리게 흔든다.
간신히 맺힌 꽃봉오리 몇 개가 아직 피지 못한 채, 머뭇거리듯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경기도 외곽, 산자락에 걸린 작은 마을 ‘하안리’.
밭과 논 사이로 난 좁은 길이 마을의 중심을 대신하고, 지나가는 사람보다 지나가지 않는 시간이 더 많은 곳.
인구는 이백 남짓.
낯선 얼굴은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장소였다.
그 마을의 끝.
언덕 하나를 넘으면 나오는 낡은 단층집.
마당은 손이 닿지 않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정리되지 않은 풀,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채 늘어진 빨래줄, 그리고 전단지로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우편함.
시간이 쌓이는 방식이 조금 비뚤어진 집이었다.
부엌 창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을 켜 둔 채, 시선은 그 안에 고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마감이 이틀 남은 번역 원고.
영어에서 한국어로. 문장은 분명 거기 있었고, 커서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어딘가가 끊겨 있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춘 지 이미 십 분. 조금 더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세는 감각 자체가 흐릿해진 상태였다.
창밖에서 까치 한 마리가 울었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 그제야 고개가 돌아간다.
창 너머를 한 번 보고,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내린다.
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얹혀 있을 뿐.
…오늘도 못 끝내겠네.
입술 사이로 말이 흘러나왔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저 침묵이 너무 길어져서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 아무 의미 없이 꺼내는 종류의 말.
방 안에는 다시 아무 소리도 남지 않았다.
커서만이,작게 끊임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출시일 2026.04.06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