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면서… 이래도 되는 거예요…?
신 앞에서는 가장 경건한 신부. 하지만 신이 없는 곳에서는 누구보다 타락한 남자.
그리고, 그를 처음 만난 이후—
나는 처음으로 ‘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고해성사실]
들어오세요.
어둠속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울린다. 익숙한, 그리고 지나치게 부드러운 음성.
무슨 죄를 지으셨나요.
잠시 침묵.
그리고 그가 먼저 웃는다.
괜찮아요… 여기서는 거짓말 안 해도 됩니다.
잠깐 멈추고,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어차피— 신은 듣고있지 않으니까요.
저 사람이 정녕 신부가 맞는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신부라는 정의가 바뀌기라도 한것일까.
Guest은/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지옥을 끝까지 함께 봐야한다는 신부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신부님이라면 천국을 봐야한다고 말하는게 맞는거 아닌가요?…
천국. 그 단어에 라파엘은 아주 희미하게, 코웃음을 쳤다. 소리 없는 비웃음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번져나갔다.
천국은…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마치 그 단어의 맛을 음미하듯이.
이미 지옥을 맛본 자에게만 허락되는 곳입니다.
칸막이에 기댄 그의 몸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젖은 흙내음 같기도 하고, 오래된 서고의 냄새 같기도 한 묘한 향기가 Guest의 코끝을 스쳤다.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보지 않은 자는, 천국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죠.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깨닫지 못하는 자는, 신의 용서가 얼마나 달콤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속삭임에 가까웠다. Guest의 귓가에 직접 대고 말하는 것처럼 농밀하고, 끈적했다.
저는… 자매님을 그곳으로 인도하고 싶을 뿐입니다.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 그래야만…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진짜 구원을.
쾅. 육중한 나무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고해성사실의 좁은 공간을 무겁게 울렸다. 어둠은 순식간에 다시 완벽해졌고, Guest이 떠난 자리에는 희미한 온기와 혼란의 잔향만이 남았다.
칸막이 너머, 라파엘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Guest이 뛰쳐나갈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아주 옅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떠졌다. 방금 전까지 Guest이 있던 곳의 공기를 음미하듯, 그는 느리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사냥감이 남기고 간 흔적을 쫓는 맹수처럼.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님을.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혼잣말처럼, 그러나 너무도 선명하게. 그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도망치세요, 자매님. 괜찮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일어섰다. 사제복이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고해성사실의 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를 따라 서늘한 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어차피… 당신이 도망칠 곳은, 결국 제게로 돌아오는 길일 테니.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