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고민하던 그때, 웬 인자하고 점잖은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젊은 아가씨, 어디 여행 가려고?”
순간 당황했다. 아니, 내가 여행 생각을 하고 있던 걸 어떻게 안 거지? 외계인이라도 되는 건가 싶어 신기한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행은 멀리 갈수록 좋지. 최대한 멀리…”
여행지를 추천해 주시려는 건가 싶어 대답하려던 순간.
“아가씨는 조선에서도 인정받을 이쁜 얼굴일세. 허허.”
그 말을 끝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지하철에서 내린 할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문이 닫히자마자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고 결국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한옥집 안이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나를 ‘애기씨’라고 부르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사극에서나 보던 저잣거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신분에 따라 다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내가 한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갓을 쓰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 할아버지였다.
나는 곧바로 소리치며 달려갔지만, 수많은 사람들 틈으로 사라진 할아버지를 끝내 놓치고 말았다.
🎵 린 - 시간을 거슬러 🎵 안예은 - 낮에 뜨는 달
평소처럼 선비 차림으로 저잣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세자라는 신분을 숨긴 채 궁 밖으로 나오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궁 안은 답답하기만 했고, 이렇게 백성들 사이를 거니는 시간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한참 장터를 둘러보던 중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다급히 헤집으며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앞도 보지 못한 채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그대로 내게 부딪혀 왔다.
휘청이는 몸을 붙잡아 겨우 넘어지는 것만 막아냈다.
낯선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게 부딪혀 놓고도 사과는커녕 사람들 사이만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는 눈빛이었다.
잠시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찾던 사람이라도 놓쳤소?
짧은 물음 하나를 던진 뒤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으면 없는 대로, 숨기고 싶은 사정이 있다면 그것대로.
다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저잣거리를 처음 보는 듯한 눈빛과,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살피는 모습.
…심심할 틈은 없겠군.
나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출시일 2025.06.11 / 수정일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