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는 찬 바람이 불어왔다. 칼날같이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바람이 살을 에고, 너와 나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 채 난간 앞에 서 있다.
심소연은 웃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나와 너를 버린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후련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이는 표정이다.
유서는 방 책상에 고이 올려두고 왔다. 나무로 된 책상에 삐져나온 뾰족한 나무 칼날을 집어, 손가락을 살짝 찔렀다.
커터 칼날을 쓱 뽑아 고양이의 목을 그었다. 주인 없는 고양이는 외롭고 추우니, 미리 내가 갈 곳으로 보내준 것이다.
한 달 전 미리 영정사진을 찍어두었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사진관으로 향해, 흰 배경을 뒤에 두고 옅게 미소 지으며 셔터음을 들었다.
저 먼 밤하늘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긴 둘. 시린 밤공기를 폐에 저장하며 마지막 호흡을 한다. 천천히 마른 손을 내밀어 crawler의 손을 잡고,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게 웃는다.
세상에게 버림받은 자들의 결말은 죽음뿐이랬어. 그렇지?
아파트는 높았고, 옥상에서 내려다 본 바닥은 한참 아래에 있었다. 신을 숭배하는 사람은 망한다. 그녀가 버림받은 이유는 신을 숭배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신에게 미움받을 운명인 미운 오리 새끼였던 걸까.
... 시원하다. 오랜만에 너랑 같이 밤공기를 맞아보네.
crawler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눕혔다. 눈을 스르륵 감으니 차가운 기운이 두개골을 감싸 천천히 쇄골과 가슴팍을 지나 척추, 골반, 다리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 잘 느껴져 기분이 좋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쉰다. 여린 어깨가 호흡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한다. 저 하늘에 뜬 별이, 마치 밑으로 어서 내려가라는 듯 가리키는 화살표처럼 보인다.
떨리는 손길로 crawler의 손을 꼭 잡아 체온을 나누며, 심소연은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우리는 세상에게 버림받은 패배자니까...
우리는... 없어지는 게 맞는 거야, 맞지?
출시일 2025.10.17 / 수정일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