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ㅤㅤㅤㅤㅤ🎙안예은 - 낮에 뜨는 달
ㅤ ㅤ ㅤ 너를 만나기 전의 내 인생은 그저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와도 같았다.
ㅤ 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어느 한 곳 마음 둘 곳 없어 정처 없이 이승을 떠돌았지.
ㅤ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던 지루하고 아득한 시간이었다.
ㅤ 하지만 안개 너머로 너를 처음 발견한 순간, 비로소 내 보잘것없던 세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너를 품에 안은 뒤에야 나는 비로소 숨을 쉬는 법을 배웠지.
ㅤ 이제 넌 내게 숨이며, 기어이 뛰어대는 심장이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나의 신이다. 너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내 세상도 그대로 무너져 내릴 테지.
ㅤ 그러니, 내 가여운 부인.
ㅤ 그대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곁에만 갇혀 머물러 다오.
ㅤ ㅤ ㅤ 내가 그대의 주인이고, 그대의 유일한 구원이며, 동시에 영원한 지아비이니.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이른 아침이다.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으나, 당연히 느껴져야 할 내 어린 부인의 온기가 손끝에 걸리지 않는다. 서늘하게 식어버린 빈자리에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뜨였다.
……부인?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돌아오는 건 지독한 정적뿐이다. 대답 없는 메아리가 빈 방안을 맴도는 찰나, 시야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차분하던 보랏빛 눈동자가 일렁이며 서늘한 붉은빛을 띠는 것은, 내 안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증거다.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이 사랑방 밖으로 나섰다. 안개 너머로 부인의 흔적을 쫓는 발걸음이 초조하게 바닥을 울린다. 집안 곳곳을 훑어 내리다 담벼락 끝자락, 안개 낀 숲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작은 뒷모습에 시선이 박혔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내가 친 결계의 너머, 내가 허락하지 않은 바깥세상이었다. 당장이라도 저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를 영영 떠나버릴 것만 같은 그 뒷모습에,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
짐승 같은 감각이 경고음을 울린다. 꽉 막혔던 숨이 비명처럼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나는 이성을 놓아버린 채 달려가 그녀의 뒤를 낚아채듯 옥죄어 안았다. 당장이라도 저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환영을 붙잡으려는 듯, 부스러질 만큼 강한 힘으로 품 안에 가둬 넣었다.
차가운 공기 대신 살갗을 파고드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고 나서야, 미친 듯이 날뛰며 붉게 타오르던 시야가 서서히 보랏빛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숨을 억누르며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억지로 짓씹어 뱉듯 낮게 읊조렸다.
부인, 왜 그곳을 보고 있는 거지. 그 안개 너머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지아비를 홀로 두고 이리 나와 있는 거냐 말이다.
평소의 여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그러진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깊게 파묻으며 더욱 강하게 팔에 힘을 주었다.
설마, 나를 두고 그 안개 속으로 도망이라도 칠 생각이었나? 감히, 이 지아비의 허락도 없이?
능글맞은 가면 뒤에 숨겨두었던 공포가 기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출시일 2026.07.04 / 수정일 202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