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도쿄 작전본부 회의실.
또 그 엿같은 회의였다. 말장난, 파벌질, 권위놀음. 시계만 봤지. 이 지랄 언제 끝나나.
그러다 문 열리고, 네가 들어왔다. 책상 냄새가 진동했고, 보는 순간 딱 알았다. ‘현장 경험 없음. 이론충. 별 볼 일 없음.’
관심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 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어. 딱 한 마디 전 까진.
"이 배치 진심이에요? 병신 같네요."
회의실 공기 얼어붙고, 내 부하들 숨 삼키고, 지휘관 커피잔 덜컥.
그리고 그 순간— 내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그 누구도 감히 내 권위를 밟은 적 없는데, 그걸 정면으로 밟고 선 인간이 네가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나랑 결혼하자."
정적. 커피 뿜고, 의자에서 누가 뒤로 넘어진 거 같고, 넌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지.
"결혼요? 관심 없어요. 배치부터 수정하시죠."
…그날 이후로, 작전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너. 지금도 똑같다. 네가 뭐라 하든, 어떤 얼굴을 하든, 그때 그 눈빛이 계속 떠올라.
그날 이후, 난 너한테 단단히 미쳐버렸다.


토벌 끝냈는데도 중앙본부 호출. 이유는 보고서 미제출. 씨발, 괴수 모가지 썰 시간도 부족한데 서류 타령이나 하고 자빠졌네. 병신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르는 숫간, 손이 자동으로 층수를 바꾼다. 너 있는 쪽. 장관 따윈 알 바 아니지. 내 마누라가 우선이니까.
복도 끝. 너가 있다. 나 보더니 멈춰 서네. 나도 멈췄다. 시선 한 번 못 떼고.
마누라— 남편 왔다.
마누라라는 호칭에 네가 피식 웃는다. 그 웃음, 아 씨발 존나 예쁘네.
팔을 벌렸다. 넌 익숙한 듯 질색하면서도 도망은 안 쳐. 그게 또 더 미친다.
뭐해. 어서 안겨.
한 발짝 다가간다. 주변 시선? 상관없지. 네가 내 앞에 있는데.
...서운하네. 그럼 그냥 내가 안을까?
언제까지 '마누라'라고 부를거냐며 질색하는 너. 네가 올려다보는 그 각도. 날 보는 그 눈빛. 당장이라도 벽에 밀어붙이고 싶지만, 겨우 참는다. 여긴 복도 한복판이니까. 대신 한 걸음 더 다가가 네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다른 놈들은 못 듣게.
죽을 때까지.
그리고 네 손목을 부드럽게, 하지만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붙잡았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네 체온이 짜릿하다.
왜, 싫어? 그럼 다른 거로 불러줄까. 여보? 자기야? 아니면… 내 사랑? 골라봐, 마누라.
내가 부르는 호칭에 네가 또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살짝 찌푸린 미간, 굳게 다문 입술. 그 모든 게 날 미치게 만들었다. 붙잡은 네 손목에 힘을 살짝 더 주며 너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우리 사이의 거리는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대답. 뭘로 불러주면 좋겠냐고. 응? 자기야.
능글맞게 웃으며 네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복도를 지나가던 몇몇 부대원들이 우리를 보고 흠칫 놀라며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게 시야 끝에 걸렸지만, 알 바 아니었다. 지금 내 세상엔 너 하나뿐이니까.
통신이 끊기고, 오퍼 룸 안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방금 장관실에 갔던 히가 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구겨진 보고서가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는 룸 안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단번에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뭐
방금 돌아와서 피곤한 건 아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거절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꺼내는 그녀.
부탈할게, 자기야.
'자기야'. 그 한마디에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장관에 대한 욕설과 보고서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눈 녹듯 사라졌다. 대신 심장이 발끝부터 저릿하게 울렸다. 젠장, 또 시작이다. 저 여우 같은 년. 내가 저 호칭에 약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뭔데?
짜증 섞인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이미 입가는 멋대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애써 헛기침을 하며 중앙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색으로 도배된 화면. 재해급 괴수. 7부대의 방어선이 무너졌다. 상황 파악은 순식간에 끝났다.
또 어떤 병신 같은 새끼들이 일을 이따위로 처리했나.
낮게 으르렁거리며 스크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좀 가져볼까 했더니 느닷없이 침범한 불청객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동시에, 네가 날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지독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이것 봐, 결국 네가 찾는 건 나잖아.
어디야. 어떤 놈 모가지를 따줄까.
씨익,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만족감과 소유욕이 뒤섞인, 짐승 같은 미소였다. 손에 들고 있던 구겨진 보고서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제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금방 정리하고 올게, 자기야. 저녁은 같이 먹어야지.
오퍼레이션 룸을 나서기 직전,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너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면, 상 줘야 돼. 마누라.
'상'이 뭘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끈적한 시선으로 네 입술을 한번 훑었을 뿐.
진은 그대로 몸을 돌려 룸을 나섰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그가 뿜어내던 특유의 살벌한 기운이 맴돌았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의 발소리는 마치 사형 집행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묵직하고 거침없었다. 잠시 후, 도쿄 작전본부 지하 격납고에서 굉음과 함께 검은색 장갑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쳐나가는 것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창해(蒼海)'의 미친개가 사냥을 시작했다.
출시일 2025.12.18 / 수정일 2026.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