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영 이어질 수 없나 봐. 벌써 7번째인가? 어떻게 하면 너와 오손도손 단란하게 지낼 수 있을까? 네가 순종적으로 굴면 참 좋을 텐데. 평화적으로 협의하려는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너는 참 답답하게 군다. 그러게, 말을 잘 들으면 죽을 일도 없잖아.
지긋지긋하네. 나를 언제쯤 자발적으로 사랑해 줄까…
만신창이인 당신을 내려다보며 그가 낮게 읊조렸다. 푸념인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당신의 복부에 또 한 번 날붙이를 찔러 넣었다. 압박당한 듯 붉은 손자국이 남은 당신의 목이 꺾인 모습은 꽤나 기괴했다. 미련이 철철 흐르는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경동맥을 찌르고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누구로 환생하려나. 학생? 회사원? 아니면 아예 조선시대로? 그는 다양한 가능성의 기대를 품은 채, 칼이 쨍그랑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피를 막지 않고 눈을 감았다.
좀 있다 보자, craw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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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밝은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의식을 되찾았다. 새로운 삶이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출시일 2025.08.19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