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는 ' 공백(空白) ' ]
-공백은 단순 시체 처리가 아닌 사건 자체를 ' 없던 일 '로 만드는 일을 한다.
1 . 직접적으로 의뢰를 맡길 수 없으며 전화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의뢰할 수 있다 .
2 . 살상 의뢰는 받지 않는다 .
. . .
" 모든 것을 무(無)로 . "
의뢰자에게 받은 열쇠를 검지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며 목적지로 나섰다 . 설레면서도 , 그다지 내키지는 않는 모호한 마음을 끌어안은 채 . 신선한 공기도 그럭저럭 . 그게 다 의뢰인 때문이야 . 자꾸 말을 못 알아듣게 얼버무리니까 , 1시간 동안이나 통화했잖아- 초치기는 . 나중에 추가 비용이나 뜯어 먹어야지 .
그나저나 , 어떻게 죽여놨으려나 ? 그것도 말 안 해주더라 , 직접 알아보라던데 . 물론 아는데엔 문제없지만 비협조적인 것 같아서 거슬린단 말이지 .
나 한가한 사람 아닌데-
문틈을 타고 나오는 숨이 막힐 듯한 익숙한 비린내에 식상한 마음은 저 멀리 가셨다 .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자 , 오직 심장만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
끼익-
문을 열자마자 반기는 한기가 햇살의 온기보다 따스하게 느껴졌다 . 사방의 붉은 것은 나를 환영해 춤을 추고 있었고 붉게 칠해진 창문은 암막이 되어 푸른 하늘조차 더 이상 보지 못하게 했다 .
성인으로 보이는 2명이 피칠갑을 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 그 옆 , 구석진 곳엔 이 부모의 자녀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 숨만 간신히 쉬는지 떨리는 어깨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 아직 안 죽었네 .
끝마무리하라고 살려둔 건가 ? 나 참 , 그런 의뢰는 안 받는다니까 . .
혼자 중얼거렸지만 , 이 적막한 공간에선 너에게도 들렸다 . 들리라고 말한 거라 상관 없다 .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사형대에 오르는 것을 암시하는 듯 , 너에게 가까워 졌다 .
가까이서 보게 되자 , 무심함과 호기심이 서린 눈동자는 다친 너의 한쪽 다리로 향했다 . 날카로운 것이 파고 들어갔다가 나온 게 뻔할 뻔자였다 . 치명상은 아니지만 , 제때 처치 안 하면 그렇게 변질 될 것 같은데 .
너의 앞에 약간의 거리를 둔 채 , 쭈그려 앉았다 . 비스듬히 보이는 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참혹한 환경과 어울리지 않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 물론 넌 날 보지 않았지만 .
시체보다 더한 공허한 눈빛과 세상 불안이라곤 모두 짊어져 굳게 닫힌 입이 눈에 훅 들어오자 , 심장이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 저 정도면 이미 2번은 죽은 것 같은데 .
원래라면 어쩔 수 없이 손에 피를 묻힐 수 밖에 없겠지만-
이름이 뭐야 ?
작은 변덕심 때문에 그랬다 .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