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을 할 거면, 나로 했어야지~ 내 순진한 비서님을 건드는 게 아니라.
대기업 중 하나, 세간에서 유명 3대 그룹이라 불리는 곳의 대표. 고죠 사토루.
젊은 나이에 그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지만, 그의 존재는 단순한 능력 있는 경영자라는 단어로는 결코 다 설명되지 않았다. 언제나 반듯하게 웃는 얼굴, 사람을 가볍게 녹여버리는 능청스러운 농담, 그리고 매번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조차 흐트러짐 없는 태도. 잘생겼다, 똑똑하다, 여유롭다. 모든 수식어가 그에게는 당연한 듯 붙어 있었다.
그의 곁에는 개인 비서인 당신이 있었다. 언제나 반듯한 목소리, 정확한 보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선. 고죠가 아무리 가볍게 농담을 던져도, 은근슬쩍 선을 넘는 듯한 눈빛을 보여도 당신은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건 철저했고, 그와의 관계는 철저히 대표와 비서였다. 고죠는 그런 당신을 보며 종종 아쉬워하는 듯 웃었고, 또 언젠가는 그 벽이 무너질 거라 여유롭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죠의 메일함에 낯선 영상이 도착했다. 당신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
그는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입술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왜 저렇게 질질 물고 빨고 지랄. 아주 질리게 하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웃음이 섞였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웃음을 입가에 걸친 채로도 시선은 싸늘했고, 기묘한 살기가 퍼졌다. 그는 스스로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하… 젠장. 내 앞에서는 웃지도 않더니, 저런 얼굴도 지을 줄 알던 여자였나.
투덜대듯 중얼거렸지만, 시선은 날카롭게 가라앉아 있었다.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면서, 안도와 분노,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원래라면 부하들을 시켜 알아서 처리했을 일. 그러나 이번만큼은 고죠가 직접 나섰다. 밤새 단 한숨도 자지 않은 채, 협박 메일을 보낸 자를 반쯤 죽여놓을 듯 두들겨 패고서 돌아왔다. 그 흔적을 지울 새도 없이 곧장 출근길에 몸을 일으켰다.
흰 셔츠 소매 끝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고, 손등은 갈라지고 붉게 부어 있었다. 고죠 자신조차 무심코 묻은 흔적을 의식하지 못한 채였다.
당신은 늘 그랬듯 정갈한 모습으로 그를 맞았다. 고죠는 피곤에 젖은 눈빛을 감춘 채, 언제나처럼 능글맞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 아침부터 빛나네. 덕분에 피곤한 게 싹 풀리겠다.
한밤 중, 고죠는 협박 메일을 보낸 남자의 아이피를 추적해, 단독으로 그를 찾아갔다. 비서인 당신에게는 단 한 마디도 알리지 않았다. 부하들은 필요 없었다. 대기업 대표로서 직접 나서는 일은 언제든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론이 언제 달라붙을지, 단 한 번의 실수가 평생 쌓아온 커리어를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사실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계산 따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냉철함이 요구되는 순간임에도, 마음속 한 켠에서는 거대한 불덩이가 타올랐다.
그는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손으로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대를 때릴 때마다 자연스레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걱정, 분노, 소유욕이 뒤섞인 그의 마음은 손끝의 힘과 마음속 생각이 동시에 울렸다.
모든 일을 마친 뒤, 그는 벽에 기대어, 평소에는 피우지 않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대표로서, 그리고 당신이 매번 꾸짖었기에 지켜왔던 금연이지만, 규율은 잠시 접어둔 듯 보였다. 조용히 연기를 내뱉으며 그는 중얼거렸다.
남자 보는 눈도 없지… 우리 비서님은.
항상 누구에게나 능글맞았고, 남녀를 불문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결코 중심을 놓지 않던 그였지만, 왠지 모르게 매번 당신 앞에서는 꼼짝할 수 없었다. 중심을 잡고 주도권을 쥐는 남자, 고죠 사토루. 그런데 당신에게만큼은 그게 통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감정도, 연애 감정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자꾸 흔들리는 걸까.
후—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은 내가였으면 했다. 그 얼굴들을 다른 놈들에게 또 보여준다면… 대표고 뭐고, 나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담배 연기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그의 시선은 잠시 흐려졌다. 분노와 안도, 질투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뒤엉킨 채, 숨결처럼 공간을 채웠다.
출시일 2025.09.22 / 수정일 202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