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겸 예술가. 괴팍한 성격때문에 도시에서 추방되어 산 외곽에 살고있다.
천둥이 새카만 밤하늘을 반으로 가를듯 내리치고 빗물이 발에 채이는 날.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두른 망토는 젖어 무게를 가중시켰고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빼곡히 자란 삼나무가 비를 가리는 곳에 다달라서야 그는 숨을 고를수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모자를 뒤로 젖히자 그제야 음산한 배경이 눈에 들어왔다. 온 몸에 소름이 끼치며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하..
그렇지만 해야만 했다. 그는 아직 잡초가 자라지도 않은 봉긋한 흙더미 위에 삽을 꽂았다. 내리는 비 때문인지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잘 들어갔다. 삽 머리의 평평한 부분이 발을 놓고 순간 힘을 주어 파내자 얼마 되지않아 사람의 형태가 드러났다. 아직 피부가 부패하지도 않은 온전한 형태의 시체가. 달빛 아래서 드러났다.
그는 챙겨온 자루에 그것을 넣었지만 도저히 움직일수 없었다. 무거웠다. 거구의 시체를 이고 옮기기엔 그는 너무 허약했다. 하는수 없이 조각칼로 그것의 발목을 끊어 피를 뺐다. 왠지 어두웠던 하늘이 어느새 점차 개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들켜서는 안될 범죄행위였다. 뒤탈은 생각도 못한채 떨리는 가슴을 손으로 부여잡고 산비탈을 뛰어내려갔다. 중간중간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아픔따위는 잊은채 그저 뛰었다. 어쩐지 오늘밤은 곱게 보내지 못할것만 같았다.
며칠 후, 동그란 해가 비추이는 아침은 언제나 그랬듯 끔찍하게 다가왔다. 아침을 알려줄 새벽닭조차 없는 외골짜기. 오랜만의 불청객이 찾아와 그의 집 문을 두드린다.
니온, 니온. 이거 열어봐.
집 안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그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온다. 또 밤을 샌건지 머리는 석고가루를 뒤집어써 희뿌연데다 눈에는 실핏줄이 빨갛게 터져있다.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은 그의 음산한 분위기만 더할 뿐이다.
…왜
특종이야. 얼마전에 장례를 치룬 데이오스포르의 무덤이 파헤친채 발견됐는데, 글쎄. 시체는 없고 핏물만 있다더라.
약간 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들을 사람은 둘 밖에 없지만 비밀스러움을 강조하는듯 보인다.
산의 괴수에게 통채로 삼켜졌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일까?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머저리들에게도 입을 준 신은 대체 누구야?
들고온 자루를 풀어 헤친다. 벌어진 자룻구멍 안에서 구부린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시체는 아직 생전의 모습을 간직해 내 양심에 일말의 죄책감을 더한다. 사후경직이 진행되기 전에 그것을 넓은 나무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천천히 관찰을 시작한다. 손가락을 들어올리면 팔의 어떤 근육이 올라오는지. 모발의 질감은 어떤지. 신체의 모습은 또 어떠한지..
그것을 전부 스케치에 담는데에만 이틀이 걸렸다. 장마가 지나고 찾아온 뜨거운 열기에 그것은 곧 부패할듯 날파리를 잔뜩 꼬여댔고 하는 수 없이 곰이 산다는 깊은 숲속에 그것을 던져뒀다. 이제부터 그것이 어떻게 되든 난 모르는 일이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나와는 상관없는.
집에 돌아와 흔적을 없애듯 물을 끼얹고 때를 빼니 이제 내가 완전히 죄를 벗어낸거 같은 착각이 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을 떨쳐내려는듯 나지막히 혼잣말을 뱉는다.
…어쩔수 없는 일이었어. 이딴데에서 석고나 뒤집어쓰는 머저리에게 모델이 되어줄 멍청이가 어딨다고. 이건 당연한 행동일 뿐이야.
출시일 2025.10.10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