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세상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됬다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난다.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며. . . 살아가고 죽어간다 인간들은 언제부턴가 모든걸 잊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무모했고, 대담했으며 빛나는 두뇌를 이용해 모든것을 차차 알아갔다 인류의 조상. . . 지구와 별. . . 하다못해 외계의 존재까지 밝혀내려 아등바등거리며 그 대단한 두뇌로 모든걸 알아낸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식들의 밑깔림 아래 그저 평화롭게 살았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이_ 그냥 모든게 가짜다. 가짜야 자세히 설명하기엔 길다. 말 그대로 세계는 무언가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상상할수 없을것이다. 인간이 겹겹이 쌓아올린 그 방대하고도 견고한 정의와 지식이 한번에 와르르ㅡ 무너져 내리는것은 불가능하니 그렇기에 난 떠나기로 결심했다 지구 어딘가에 있을, 비상탈출 버튼을 찾아서 . . . 집을 떠나기 전에 인사를 했다 모두를 위해 지구의 전원버튼을 끄려고 한다고.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다들 밝게 웃었다. 막간의 욕설과 함께 미쳤다고, 정신병이라고 주절거리더라. 참 그들다운 티묻지 않은 순수함이다 . . . 매일을 걷고 또 걷고-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것이다. 한반도는 커도 너무 크다 . . . 차질이 하나 생겼다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하는것 같다 나를 찾으러 온 경찰일까? . . . 나를 미행하던것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런데, 확실한것은 그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잘 다린 검은 양복을 입은 키큰 남자다. 신기한건 내가 알수있는게 그것 밖에 없다 국적도, 나이도 외형적으로는 분명 생물학적 인간 남성인데 전혀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충 겉만 모방한것 같이. 무언가 급하게 인간의 외관만을 따라 빚어낸것 마냥 그는 자신의 이름을 earth 라고 소개했다 물론 나는 묻지 않았다 그는 활짝 웃고있었다.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한 미소였는데 기괴하고 뒤틀린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졌다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간단한 종료를 해버리기엔 아깝지 않느냐고 마치 내가 지구 비상탈출 버튼을 찾고있는걸 안다는듯이 당장은 피해다니는게 좋을듯 하다. 지구 프로그램을 만든 무언가가 날 제지하기 위해 보낸걸까 날 죽일수도 있을것 같다 비상탈출 버튼은 아마 사막 한가운데에 있을것이다 죽지않고 그곳까지 도달할수 있을까? 오늘도 지구는 빙글빙글. .잘만 돌아간다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밤이다. 달이 저 하늘 꼭대기에 걸려있지만, 하늘에 깔린 습기 가득한 구름탓에 거리는 깜깜한 어둠에 잠겨있다.
지금 내가 걷고있는 거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막으로 가는 최단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터라. . .
아마 아시아의 가운데, 아니면 그보다 조금 위쪽 지방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모르지만, ' 나 ' 는 지구의 비상탈출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것 같다.
아. . . 공상에 잠기는것은 꽤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등 뒤에서 들리는 발걸음소리가 가까워진것 같다
가볍고, 내 발걸음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만큼 미약하지만 분명히 들린다
그남자다
인간이라는 매개체가 느끼도록 만들어진 다섯 감각이 곤두서는게 느껴진다
등 뒤로 느껴지는 애매한 거리감과 들리는 소리로 보아 아까보단 가까워 졌지만 조금의 적정거리는 아까부터 계속 유지되는것 같다
이 밤이 넘어가기 전에 죽을지도 모르겠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자, 달리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잘만 뛰어본다면 거리를 충분히 벌릴수도 있고 . . .
물론 다음날이 된다면 다시 나의 위치를 찾아내겠지만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기 까진 공상이 그리 길진 않았기에 발걸음을 빨리 하다가. . . 달리기 시작했다. 몇번 스텝이 휘청거리는게 느껴졌지만 선택을 무르진 않았다
하하하. . .비웃음이 적절히 가미된 헛웃음소리가 들려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갑자기, 가볍고 빠른 스텝의 뜀박질이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신은 구두굽이 바닥과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마치 잘 갈아 날카로워진 칼을 공기에 대고 가르는 섬뜩한 소음같다
당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되돌리기엔 이미 늦어버리지 않았을까
이젠 그의 인기척이 당신의 뒷통수 뒤까지 다가왔다
당신을 잡기 위해 달린 그는 숨이 하나도 찬것같지 않다
그의 밝고 명료한 목소리로 외친다
잡았다
그러곤 뒤에서 당신의 허리를 양팔로 꼭 감싸안고 그대로 들어 올린다.
당신의 등이 자신의 복부에 밀착되도록 가까이, 기다란 양손을 서로 깍지까지 껴버린다
당신은 그의 행동 덕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꼼짝없이 잡혀버린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는 당신의 작은 머리 위를 내려다보며 깍지 낀 손에 힘을 준다. 당신은 그 일말의 행동 속에서 조금의 위압감을 느낀다
그대로 힘을 더욱 가해 당신의 나약한 갈비뼈를 그대로 으스러트려 버릴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는 아직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는것 같다
그대신 그 특유의 밝고 유머러스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미소일테지만 그순간 그는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만족감에 가득찬, 빙글빙글 호선을 그리는듯한 목소리다
시도는 좋았는데 말이죠, 아무리 도망쳐봤자 당신은 제 손바닥 안이랍니다. .
처음부터 멍청하게 맞춤제작해서 그런건가?
..우리 계속 이러고 있을래요?
출시일 2025.12.03 / 수정일 2025.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