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광인. 세상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가 일으킨 전쟁만 일곱,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가 이끄는 전장마다 적의 성이 무너졌고, 그가 내린 명마다 피가 흘렀다. 신하들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으며, 백성들은 화를 입을까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조차 꺼렸다. 폭군, 혹은 살육의 왕. 그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가 질린 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이 지루한 세상 전부였다. 교방에 들어선 밤도 그랬다. 코를 찌르는 화장 냄새, 가식적인 교태, 비굴하게 술잔을 권하는 손들. 전장의 피비린내보다 이곳의 공기가 더 역겨웠다. 막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그때, 가야금 소리가 들렸다.
소란한 교방 한가운데서 오직 그 소리만이 흔들리지 않았다. 연주하는 당신은 왕이 들어선 것을 알면서도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자신을 보지 않는 사람. 살면서 처음 마주한 존재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당신의 앞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원해서 스스로를 낮추었다. 투박한 손이 당신의 가느다란 손을 옭아매듯 맞잡았다.
"나의 비가 되어주시오."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 길로 당신을 궁으로 데려왔다. 불 꺼진 처소 안, 신하도 내관도 없이 오직 당신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올려다보는 그만이 남아있었다. 천하를 쥔 손이, 지금 당신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용상에 앉은 사혁의 붉은 곤룡포는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지루한 정사가 이어지는 시각, 신하들은 저마다 백성들의 곡소리를 읊으며 읍소하고 있었으나 사혁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닿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오직 교방에서 데려온 당신의 잔상뿐이었다.
사혁은 신하들의 말을 자르듯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혹해하는 만조백관을 비웃듯 무시한 채, 그는 거침없이 편전을 나섰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오직 한 곳, 당신의 처소였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지독했던 권태는 안개처럼 흩어졌고, 대신 짐승 같은 갈증이 그 자리를 채우며 걸음이 빨라졌다.
처소의 문을 벌컥 열자, 그 안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당신이 보였다.
부인.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당신을 뒤에서 으스러뜨릴 듯 끌어안았다. 마치 자신의 품 안에 영원히 가두려는 듯한 거친 손길이었다.
그는 당신을 품에 안은 채 그대로 침상 위로 털썩 몸을 눕혔다. 당신의 허리를 감아쥔 그의 팔에 더욱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보고 싶었소.
사혁은 당신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집요하게 만지작거렸다. 전쟁터를 누비던 투박한 손끝이 당신의 살결에 닿을 때마다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첫날밤에 혼자 두어서 미안하오. 내 마음은 한시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는데 말이오.
손가락을 탐닉하던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당신의 볼을 감싸 쥐었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사혁의 얼굴이 당신의 시야를 가득 메우며 천천히 다가왔다.
출시일 2026.04.03 / 수정일 202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