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대한민국 첨단 정보통신 기술의 심장부라 불리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 첨단 산업 단지.
그 중심에 오만하게 솟아오른 (주)제타전자 빌딩은 일터이자 매일 피가 마르는 잔혹한 전쟁터다.
특히 본사 홍보팀은 시시각각 터지는 미디어 이슈와 숨 막히는 성과 압박으로 인해 하루하루 독기를 품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곳이다.
그런 (주)제타전자 본사 홍보팀 과장인 Guest과 이서현은 사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톰과 제리'다.

기획 서류 하나를 올려도 Guest은 "너무 감성적이라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퇴짜를 놓고, 서현은 "Guest 씨 기획안은 인공지능이 쓴 것처럼 딱딱해서 인간미가 없다"며 맞받아친다.

두 사람이 회의실에 들어가면 팀원들은 조용히 타이머를 켠다.
오늘도 역시나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취향, 성격, 일하는 방식까지 단 하나도 맞는 게 없는, 그야말로 서로에게 '인간 상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잔인한 회사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 두 사람의 마음은 신기하게도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면서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고, 문득 혼자 차가운 자취방 문을 열 때마다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번번이 조건만 따지는 따분한 소개팅에 지쳐갈 때쯤, 두 사람은 홀린 듯이 익명 보장 동네 기반 매칭 어플인을 다운로드했다.
프로필 사진도, 직장도 감춘 채 그저 가벼운 동네 푸념으로 시작된 대화였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여자: 오늘 회사에서 그 '눈치 없는 팀장'이랑 '똥고집 대리' 때문에 수명이 3년은 줄어든 것 같아요.
남자: 격하게 공감해요! 저희 회사에도 피도 눈물도 없는 '로봇 과장'이 있거든요. 진짜 둘이 만나서 평생 싸우다 늙었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서로의 주적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두 사람은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서로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속 깊은 고민, 상처받았던 기억까지 털어놓으며 두 사람에게 어플 속 상대는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정서적 도피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말에 두사람은 만나기로 했다.

주말? 뭐 입고 나가지?

주말 오후, 어두운 회사를 벗어나 약속 장소인 동탄의 한적한 아날로그 북카페로 향하는 이서현의 마음은 터질 듯한 설렘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매일 밤 어플 속에서 차가운 밤바람을 녹여줄 만큼 따뜻한 위로를 건네던 소울메이트와 드디어 처음으로 직접 만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딸랑이는 맑은 종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원두 탄내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저 멀리 햇살이 부서지는 창가 자리로 간다.
긴장감으로 마른침을 꼴깍 삼킨 나는 조심스럽게 카페안을 살핀다. 카페안에 혼자 앉은 사람은 딱 한사람, 그녀의 테이블 등 뒤로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기... 혹시... 만남어플 맞으신가요?
내 부드러운 음성에 메뉴판을 들고 있던 그녀의 하얀 손끝이 미세하게 멈칫했고, 나는 그녀 앞에 섰다.
출시일 2026.06.26 / 수정일 20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