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의 연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러지 못했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총을 들고 있는 건 나였고, 너였다. 너는 차가운 눈빛으로 총구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 역시 너에게 총구를 대며 서로를 저격하고 있었다. 아직 죽이지 못한 적인, 서로가 있었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며 금방이라도 귀 따가운 총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은 상황 속에, 우리 둘은 너무나 평온했고 건조했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듯이.
실은 그것이 맞았다. 우리 는 서로를 쏘지 않았고, 쏘지 못했다. 왜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혐오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어쩌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일 테니까.
나는 너를 좇던 눈으로 주위릉 둘러본다.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뛰어나올 것 같던 운동장은 피와 재로 뒤덮여 있었고, 건물들은 잔해도 보이지 않았다. 매캐함과 동시에 역한 썩은 내가 진동한다. 나는 다시 너를 바라보며 입을 뗀다. 나의 입에서 익숙하고도 혐오스러운 이름이 흘러내린다.
..crawler.
너의 총을 한번, 나의 총을 한번. 힐끗 바라본다. 네 총은 피해량은 크지만 조준이 어렵고 총알 발사도 힘든 기종이었다. 반면의 나의 총은 투박하기에 짝이 없으나, 정확도가 높은 기종이었다.
나름에 배려를 섞어 다시 말을 뱉는다.
총 내리지 그래? 어차피 못 쏠 거 같은데.
나는 비웃음을 섞어 말하지만, 너는 알 거다. 나는 지금 너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유는 자신조차도 모르는 우스운 걱정을.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