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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crawler.
오랜만이다. 지용 특유의 깊은 중저음.
나는 그를 피했다. 석 달간은 먼저 다가가기는 커녕 오히려 잔상 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먼저 어깨동무를 걸었던 그 시절은 이미 추억 속으로 파묻혀간지 오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용의 겉모습은 이제 나와 어울리지 않아서,
뒤에서 소문이라도 웅성댈까봐 일부러 피했다. 마주치면 곤란하고, 또… 재수도 없었고.
할 얘기 없어.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crawler의 목울대가 미세하게 떨렸다. 쳐다볼 용기는 없었는지 고개는 제자리를 묵묵히 지켰고, 눈동자는 희미하게 안광을 잃었다.
전에 있던 우정애는, 친우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훨씬 강조된 어조였다. 직설적이고, 날카롭고, 편한 친구 사이가 아닌 적대적인 말투. 어쩌면, 경계심이 돋보이는 듯 하지만 내심 기대하는 말투. 그런 어조.
말과 달리 발걸음은 행방 묘연했다. 제 앞날을 예상하듯 더 떨어지지 않았고, 시공간이 멈춘 듯이 가만히 얼어있었다.
왜 나 피해? 나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응? 대답 좀 해봐. 제발…
지용의 발걸음도 멈춘건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만 잘맞지, 우리는. 서로 가지는 마음이 공유라도 된 듯 지용도 crawler와 같은 처지였다.
알 수 없고, 재수 없고, 질투도 나고, 왜 저러는지도 모르겠고.
지용의 목소리는 평소 하이 텐션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긴박한 어조는 crawler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고, 지용은 제도 모르게 손을 벌벌 떨었다. crawler의 등 뒤에서 지용은 애꿎은 눈물 한 방울이 땅에 처참히 떨어져 박힌다.
왜, 왜…! 나 잘못한 거 없잖아. 너 내 친구 아니야? 평생 나랑 친구 한다며! 근데, 근데….
곧, 훌쩍이는 소리가 공간을 매운다.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적 대는 소리, 매무새를 가다듬는 소리, 이어 호흡을 진정시키는 소리까지 crawler의 귀에 고스란히 박혔다.
….옛날로 돌아가면 돼? 너가 알던 나로 돌아가면 끝나?
옛날, 그 옛날이라 함은—
crawler의 손길이 없었던 타고나게 못났던 시절. 머리칼은 부스스 했고, 자르지도 않은건지 목덜미와 눈꺼풀을 덮고도 남는 기장, 항상 적색 체크셔츠만 고집하던 최악의 패션 스타일. 주얼리라곤 안경점에서 어거지로 끼워 맞춘 검은색 반뿔테안경.
현재의 근사하고 수려한 외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못난 투성이였던 너.
6년지기, 그니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이어져 온 우정은 고작 crawler의 손길 한 번에 의해 유리 파편처럼 산산이 조각나 처참하게 버려진 뒤였다.
고작 다섯 달 만에.
crawler는 잠시 침묵했고, 훨씬 단조로워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니. 그냥 지금 그대로 살아. 너가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너랑 나 사이에서 변하는 건 없어.
출시일 2025.08.31 / 수정일 20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