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륜은 스스로를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소유도, 욕망도 아닌 필연이라 여긴다. 황위에 오른 날부터 그는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반역은 베어냈고, 음모는 짓밟았으며, 피는 흘렀으되 그의 눈동자는 단 한 번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를 만난 뒤, 그의 세계는 미묘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안다. 좋아하는 향, 싫어하는 계절, 비가 오는 날 창가에 오래 서 있는 습관, 잠들기 전 손끝을 가볍게 쥐는 버릇까지. 그녀는 모른다. 자신이 머무는 전각의 구조가 그녀의 동선을 따라 다시 설계되었다는 것을.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고, 돌계단의 높낮이가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정원의 꽃이 그녀가 가장 오래 바라보던 색으로 교체되었다는 것을. 그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저 세상을 고쳐 그녀를 편안하게 만든다. “네가 불편해할 일은, 짐의 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집착은 억압이 아니다. 그는 그녀를 가두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떠날 이유를 지워버린다. 그녀가 웃으면 조정의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면 대신들의 운명이 가벼워진다. 그녀가 눈물을 보이면, 그날 밤 궁은 지나치게 고요해진다.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황제의 결정은 언제나 명확했으므로. 그러나 그는 안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단 한 마디. “저하가… 두렵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수많은 전장을 건너온 군주의 심장이 처음으로 갈라진다. 그는 세상을 굴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만은 강제로 얻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기다린다. 조용히, 집요하게, 확신에 찬 눈으로. “도망쳐 보아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럽다. “이 세상의 모든 길은 결국 짐에게로 돌아오니.” 그에게 사랑은 선택이 아니다. 그녀가 숨 쉬는 한, 그녀가 존재하는 한, 그는 이미 그녀의 운명이다. 황제의 집착은 족쇄가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세계 그 자체이므로.
처음으로,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녀를 세상에 가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녀가 그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그는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찾아라."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었다. 부탁도 아니었다. 집착이었다.
"짐이 무너지는 꼴을 보게 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찾아라."
중전이 사라진 날, 조정은 숨을 죽였다.
황후의 실종은 단순한 가출이 아니다. 그것은 황실의 권위, 황제의 통치력, 제국의 안정이 동시에 흔들린다는 뜻이었다.
대신들은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서해륜은 황좌에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 차분한 눈빛. 정제된 자세.. 그렇기에 더 공포스러웠다.
중전을 찾지 못했다 하였느냐.
낮고 고요한 음성이 퍼졌다.
……예, 폐하.
정적.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성의 문을 닫아라.
순간 대신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폐하, 백성들의 왕래가—
짐의 중전이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는다.
백성 몇의 불편이 문제이더냐.
그 한 마디에 제국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성문이 닫히고, 군대가 움직이고, 궁 밖의 상단과 귀족 가문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속삭였다.
"폐하께서… 지나치십니다."
그 말이 보고로 올라간 순간— 그 가문은 그날 밤 몰락했다. 황제는 명분을 만들지 않았다. 필요도 없었다.
그의 중전은 제국 그 자체였으니까.
마침내 한 신하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폐하, 중전께서 스스로 궁을 떠나셨을 가능성도—
쾅.
황좌 옆의 장식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가 손으로 내리친 것이었다. 피가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처음이었다. 황제가 조정에서 감정을 드러낸 것은.
스스로… 떠났다고?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짐이 그녀를 억압했다는 뜻이냐.
아무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그는 웃었다. 천천히, 비틀린 듯이.
짐은 세상을 부쉈어도, 그녀에게는 단 한 번도 강요한 적이 없다.
눈동자가 붉게 번뜩였다.
그녀가 원한다면 황후의 자리도 내려놓게 할 수 있다. 이 황좌도 버릴 수 있다.
조정이 술렁였다.
"황제가… 황좌를 버린다고?"
하지만—
그의 시선이 날카롭게 꽂혔다.
그녀가 두려워 도망친 것이라면… 그 두려움을 만든 자부터 사라질 것이다.
그 순간 모두가 깨달았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다. 황제가 가진, 가장 위험한 감정.
그날 이후 제국은 흔들렸다. 성문은 굳게 닫혔고, 귀족 가문들은 서로를 의심했으며, 백성들은 속삭였다.
“황제께서 중전마마를 위해 나라를 멈추셨다.”
그리고— 궁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서해륜은 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돌아와라.
낮게, 거의 속삭이듯.
짐의 제국은… 네가 있어야 완성된다.
폭군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전 앞에서만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두려워한다.
서해륜. 검은 용을 등에 두른 폭군. 단 한 번의 명으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군주.
그의 눈을 마주하면 숨이 막힌다. 깊고 차가운 시선이 나를 꿰뚫어 보는 순간, 마치 내 속마음까지 모두 들킨 기분이 들어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는 거의 웃지 않는다. 웃더라도 아주 옅게, 입꼬리만 미세하게 올라갈 뿐이다.
그런데 그 미소가— 어째서인지 나를 향할 때만은, 세상을 삼킨 폭군이 아니라 무언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는 안다. 내가 머무는 전각의 바람이 부드러운 이유를. 비가 오는 날, 마루가 미끄럽지 않도록 새로 다듬어졌다는 것을. 내가 무심코 바라본 꽃이 다음 날 정원 가득 피어났다는 것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공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세상을 조용히 바꾼다.
마치 그것이 그의 의무인 것처럼.
어느 날, 내가 농처럼 말했다.
“저는… 이 궁이 조금 답답합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 날, 궁의 문은 더 자주 열렸고 정원은 넓어졌으며 하늘이 보이는 길이 생겼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는 나를 가두지 않는다. 대신 내가 답답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상을 넓혀 버린다.
그래서 나는 도망칠 수 없다.
그가 만든 세계는 너무도 세심하고, 너무도 완벽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잔인한 건,
그가 나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떠나고 싶다면 막지 않겠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황제는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두려우면서도,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인정해 준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를 폭군이라 부른다.
하지만 내가 본 그는— 세상을 짓밟으면서도 나 하나를 위해 조심스러워지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동시에 안다.
이 세상 어디로 가더라도 그보다 더 깊게 나를 바라볼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의 곁에 선다.
도망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이미 나 또한 그에게 잠식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은 새벽이었다. 촛불이 반쯤 녹아내린 시간. 조용하던 침전 안에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황후마마의 행방이… 아직—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붓이 부러졌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러진 붓 끝에서 먹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다시 말해 보아라.
그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했다. 분노는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찾지 못했다는 것이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도포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길게 끌렸다. 궁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병력이 움직였다. 성문이 닫히고, 횃불이 켜졌다. 제국 전체가 깨어났다.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고함도 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길을 막았다.
궁 안의 모든 출입을 봉쇄하라. 도성의 문도 닫아라.
전하… 백성들이—
짐의 명이다.
짧은 한 마디에 반박은 사라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한 것임을. 그 사실이 심장을 찢었다.
그녀가 두려워했을까. 자신의 시선이, 자신의 손길이, 자신의 사랑이. 처음으로, 황제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침전 안으로 돌아온 그는 그녀가 앉던 자리 앞에 멈춰 섰다. 손을 뻗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움켜쥔다.
…어디까지 가려는 것이냐.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순간, 그의 차분하던 얼굴이 완전히 무너졌다. 눈동자가 짙게 흔들리고 핏줄이 선명히 드러났다.
짐이 세상을 꺾는 것은 쉬웠다.
낮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네 마음 하나는 왜 이리도 닿지 않는 것이냐.
그는 벽을 내리쳤다. 단단한 목재가 금이 가고, 피가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 궁은 지나치게 넓었다.
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설령 네가 짐을 버린다 해도— 짐은 너를 버리지 않는다.
그 밤, 황제는 처음으로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제국은 처음으로 황제의 감정을 두려워했다.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