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그것은 3년째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는 시하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잠시 이 불행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하가 갓 태어난 당시, 원래부터 몸이 약했던 시하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자마자 세상을 뜨게 된다.
그 후, 혼자 남은 자신의 아들이 불쌍했던 그의 아버지는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평일에는 지방의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올라와 시하를 보살피고.
다른 아이들은 엄마의 품에 안겨 이것저것 투정을 부릴 나이에 시하는 가지고 싶은 게 있어도 참는 법을 배웠다.
평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돌봄을 받았다.
하나 밖에 없는 제 손주가 벌써부터 철이 들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건 시하의 아버지 뿐만이 아니었다.
제 어미를 대신해 사랑을 줘야겠다고 생각한 시하의 할머니는 매달 나오는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을 아끼고 또 아껴 시하의 용돈으로 주었다.
꼬깃꼬깃 접힌 할머니의 쌈짓돈 만원이 주머니에서 나오는 날은 시하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남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 시하는 노란 유치원 가방을 벗고 좀 더 멋있는 초등학생 가방을 맸다.
입학식 당일. 남들은 죄다 엄마 손 잡고 강당에 들어서는데, 시하 혼자 할머니 손을 잡고 강당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할머니면 어떠한가. 시하에겐 할머니가 엄마 그 이상의 존재였으니.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란 건 신경 안 쓸래도 안 쓰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반 아이들이 어린 마음에 시하를 놀리고 따돌리기 시작했다.
엄마도 없고, 매일 할머니 손 잡고 등교를 한다며. 옷도 3개밖에 없냐며, 매일 입는 옷만 입고 다닌다고.
그 말에 시하는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전부 다 맞는 말이었으니.
아버지는 타지에서 부모님과 하나뿐인 아들을 먹여 살리겠다며 밤낮으로 땀을 흘리셨고, 할아버지도 그런 제 아들이 가여워 폐지를 줍고 다니셨으니.
철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초등학생이었다.
어느순간 할머니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게 된 후로부터 시하는 혼자 등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머니는 그런 시하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주머니에서 꾸깃한 쌈짓돈을 꺼내 용돈을 주셨을 뿐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사춘기의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원래 성격도 조용했던지라 겉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부모님에게 말대답을 하거나 조금 반항하는 정도였을 뿐.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간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시하는 특유의 만만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일진들의 장난감 신세가 되었다.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는 건 기본이었고, 틈만 나면 괴롭힘을 당했다. 심하면 가지고 있던 돈을 빼앗기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시하는 일진들에게 당한 분풀이를 애먼 할머니에게 풀었다.
사소한 말에도 짜증을 내고, 괜히 날카롭게 굴었다.
물론 할머니는 그저 손자의 사춘기가 시작된 정도로만 생각했다.
시하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끝내 알지 못하셨다.
비극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찾아와 사람을 괴롭힌다.
그날은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가방 속에 졸업장을 품은 채, 시하는 할머니와 함께 집 근처 중국집으로 향했다.
안 그래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하루 종일 쏟아지는 비는 너무나 버거웠다. 시하는 우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할머니를 부축하며 겨우 중국집 안으로 들어섰다.
맛있는 음식 냄새와 함께,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일진들에게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모처럼 시하의 마음속에도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평소라면 꿈도 못 꿨을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오늘만큼은 그야말로 최고의 날이었다.
간만의 외식을 마치고 할머니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는 아까보다 더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빗물이 시야를 가릴 정도라 몇 걸음 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하는 보이지 않는 앞을 헤치며 한 손으로 할머니를 부축하고, 다른 한 손으로 우산을 붙잡은 채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때였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혀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를 듣지 못했다.
순간,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뒤엉켰다.
그리고 그 좋은 날. 시하의 할머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3년 후,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잃은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할아버지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시하에게 남은 가족은 아버지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일하며 아들을 키우느라 지쳐 있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했다.
새 가정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시하와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찾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락만 주고받게 되었고, 그마저도 점점 뜸해졌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늘 들려오던 할머니의 목소리도, 할아버지께서 매일 한 잔씩 드시던 막걸리의 구수한 냄새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혼자서 뭘 해야할지 몰랐다. 옆에 있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존재들이 사라지니 '뭐라도 해야지'보다는 '해도 되는걸까?'라는 두려움이 먼저 떠올랐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직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돈이 남았으니. 당장은 뭘 하기보다는 그저 이 우울한 감정을 내버려두고 싶었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졸업 후 꼬박 3년을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 그런게 뭐가 중요해. 지금 졸업장 따위보다 중요한 건 당장 내일 뭘 해야 살아남을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남겨주신 사망보험금도 이젠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돈이 바닥을 드러내니 슬슬 애써 모른 척 해온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정신을 차린 후, 우선 집부터 청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 다음 처음으로 직접 요리를 해서 밥을 해먹었다. 성취감이 이렇게나 좋은 거였던가.
그런 다음 핸드폰을 들고 알바 사이트를 뒤적거렸다. 알바는 해본 적도, 아직 사람 상대는 무섭지만 이젠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굶어죽겠다는 두려움이 시하에게 용기를 실어줬다.
한참을 찾다보니 시급도 근무시간도 적당한 곳을 하나 발견했다. 메이드 카페 알바.
출시일 2026.09.05 / 수정일 2026.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