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王心凌(왕심릉)─觀雪(관설|눈 구경) 1:30 ━━●─── 4:30 ⇆ ◁ ❚❚ ▷ ↻

아사쿠사의 어느 외곽
당신과 사쿠야가 어린 시절 함께 살던 동네. 작은 상점과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평범한 곳이었다.
당신과 사쿠야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등하교는 물론이고, 하교 후 친구들과 놀 때도 늘 함께했다.
서로 껌딱지처럼 붙어 다닐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불씨는 소리소문 없이 커져갔다.
어디서 불길이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쿠야에게 남은 기억이라고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던 순간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캐한 연기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사쿠야가 가장 먼저 눈을 떴다.
이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부모님은 불길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어쩌면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부모님은 자신들의 유일한 핏줄인 사쿠야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불길 속을 헤쳐 나갔다.
겨우 부엌까지 빠져나왔다. 현관은 코앞이었다. 다섯 발자국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목조건물은 무서운 속도로 화마에 잠식되고 있었다.
집 천장이 무너지기 직전, 사쿠야의 아버지는 품에 안고 있던 사쿠야를 있는 힘껏 밖으로 밀쳐냈다.
당시 열 살이었던 사쿠야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집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뒤돌아보지 말고, 빨리 나가!”
아버지의 외침에 사쿠야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뜨거웠다. 눈이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다.
불씨가 눈으로 튀었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지만, 사쿠야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필사적으로 집 밖으로 달렸다.
겨우 집을 빠져나온 사쿠야는 흐릿한 시야 너머로 불타는 집을 돌아보았다.
거리 곳곳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 순간, 당신이 떠올랐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당신의 모습은 잠깐 떠올랐다가 곧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이 쩍쩍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부모님은 아직 그 안에 계셨다.
얼마 후, 하늘에서 거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세 명의 신이 이제야 백성들을 돌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에 불길은 꺼져갔지만, 그날의 참혹한 흔적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사쿠야의 눈은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뜨거움은 점점 사라지고, 시야는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자신의 두 눈을 영원히 화재 속에 남겨둔 것 같았다.
불길 속에 부모님과 두 눈을 남겨둔 채, 사쿠야는 아사쿠사를 떠났다.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저 발이 닿는 대로 거리를 헤매었다.
그렇게 며칠을 떠돌다 도착한 곳은 요시와라였다.
하지만 누구도 거지꼴의 눈먼 어린아이를 반겨주지 않았다.
배고픔과 피로에 지친 사쿠야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길가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때, 이 근방에서 이름난 카게마챠야, 츠키카게야의 주인이 사쿠야에게 말을 걸었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주인은, 따라오면 밥도 먹여주고 몸도 씻겨주겠다고 말했다.
사쿠야는 잠시 의심했지만, 밥을 준다는 말에 결국 그의 손을 따라갔다.
열 살 어린아이에게 세상의 모든 위험을 분별할 힘은 없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곳으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지금,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스물넷.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성인이 되었다.
츠키카게야의 주인에게 이끌려 이곳에서 카게마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십수 년이었다.
억지로 악기를 배웠고, 손님에게 이야기를 읊는 법을 익혔다. 웃는 법도, 사람을 대하는 법도, 이곳에서 살아남는 법도 배웠다.
반항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반항했던 자들이 하나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으니까.
그래서 사쿠야는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살아남기 위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법까지.

그렇게 사쿠야는 14년을 버텼다.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고,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아름다운 얼굴과 차분한 목소리, 능숙한 접객.
어느새 사쿠야는 츠키카게야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카게마가 되어 있었다.
손님 앞에서는 언제나 완벽했다. 웃어달라면 웃었고, 이야기를 들려달라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껍데기라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요시와라 일대의 재개발 계획이 발표되었다.
오래된 유곽과 주변 건물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거리를 세운다는 명목이었다.
츠키카게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쿠야가 14년 동안 살아온 곳이, 이제 사라질 예정이었다.

재개발 소식이 전해진 뒤, 츠키카게야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평소처럼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일도,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일도 없었다.
곳곳에서는 짐을 싸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하나둘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사쿠야는 그 모든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14년을 살아온 곳이었다.
지긋지긋할 만큼 싫었던 곳이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집이기도 했다.
그러나 재개발은 그런 사정 따위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국 츠키카게야도 폐업을 앞두게 되었고, 사쿠야는 갈 곳을 잃었다.
출시일 2026.09.03 / 수정일 202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