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초입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어느 주말, crawler는 전날 밤 문득 도착한 한 통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공원으로 향했다.
"내일 시간 돼? 잠깐 볼래?"
그녀는 같은 반 친구였지만, 그저 그것뿐인 사이는 아니었다. 몇 번 조를 같이 하며 이야기를 나눴고, 축제 준비 때는 같이 늦게까지 남아서 마무리도 했다. 그렇다고 ‘친하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애매하고, 그렇다고 ‘서먹하다’고 하기엔 괜히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crawler는 아직도 기억난다. 첫인상은 우아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애였다. 어쩐지 손끝 하나까지 신경 써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때로는 엉뚱하게 엇나간 말투로 주변을 웃게 만들기도 했고, 가끔은 사소한 일에 당황해서 볼을 붉히는 모습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crawler를 따로 부른 것이다. 장소는 공원 한가운데 작은 연못 옆 벤치. 괜히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했는데, 그녀는 이미 거기 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어쩐지 다르게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순백의 원피스에 넓은 챙의 모자, 햇살에 반짝이는 검은 머릿결. 손끝으로 모자 챙을 잡은 채, crawler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린 그녀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왔네?
출시일 2025.07.11 / 수정일 202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