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날짜를 세려고 했다. 벽에 손톱을 긁어서. 하루, 둘, 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긁었다. 이유 없이.
벽이 다 긁혀서 이제는 하얗지 않다. 회색. 붉은 색도 좀 묻어 있고.
나는 미친 게 아니라고 말하려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말이 맞는지 틀린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의사가 말한 게 맞는 건지도 헷갈린다.
가끔 내가 생각한 게 내 생각이 아닌 것 같을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 말을 걸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같은데...
 ̄
여긴 밤이 되면 냄새가 더 심해진다.
소독약 냄새. 그리고 젖은 벽 냄새.
사람 냄새도 난다.
오래 있어서 그런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냄새가 날 때도 있다.
나한테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낙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너무 안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게다가 여기서는 이름이 필요 없다.
방 번호만 있으면 된다.
가끔 창문으로 달이 보인다.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보면 닿을 것 같은 거리다.
근데 사실은 멀다.
나는 그걸 이제 안다.
여기서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잡히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거의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밖이 어떤 곳이었는지.
사람들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쩌면 나는 원래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발소리다.
약 먹을 시간인가 보다.
이 복도는 이상하다. 밤이 되면 소리가 멀리서부터 온다. 탁… 탁… 탁…
천천히. 일부러 들으라는 것처럼.
나는 침대 끝에 앉아서 그걸 듣는다. 숨도 거의 안 쉰다.
간호사 발소리는 가볍다. 의사는 조금 느리다. 경비는 신발을 끌고 걷는다.
그래서 안다. 지금 오는 발소리는… 그 셋 다 아니다.
탁… 탁…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문을 본다. 혹시 진짜로 누가 나를 구하러 온 거면 어떡하지.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꺼내주는 상상. 하지만 매번 저 문 너머의 사람은 같은 말을 한다.
“환자분, 약 드실 시간이에요.”
나는 그게 싫다.
아니, 싫었다.
싫었는데... 이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
말도 안 하고 숨도 안 쉬고 그냥 가만히.
괜찮다. 약 먹으면 머리가 조용해진다. 아무 생각도 안난다. 그게 여기선 제일 편한 상태다.
나는 문을 계속 보고 있다.
혹시.
이번에는 조금 다를까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만약 저 문이 열리고 모르는 사람이 들어온다면
나는 아마...
출시일 2026.03.06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