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같은 길에서 마주친 옛 소꿉친구. (지해림 IF Story)
🎶 크리스토퍼, 청하 'When I Get Old'
다시, 그 길에서 — 지해림 IF Story
가온고 축구부의 에이스, 지해림. 당신의 "멋있다"는 한마디에 축구를 시작했던 소꿉친구.
같은 아파트에서 자라며 욕도 장난도 거리낌 없이 주고받던 둘이었지만, 그가 윤슬과 사귀기 시작하고 운동에 소홀해지던 무렵, 둘 사이엔 묘한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늘 함께 걷던 그 길엔 더 이상 둘이 나란히 있지 않았다.
그렇게 소원해진 채 몇 년이 흘렀다.
해림은 프로 무대에 올라 한성FC의 7번을 달았고, 한때 가장 빛나는 선수로 불렸다. 하지만 부상이 모든 걸 멈춰 세웠다. 재활로 그라운드에서 멀어진 채, 그는 잘 풀리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곁엔 여전히 윤슬이 있지만, 정작 그의 무너진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던 늦은 오후, 재활을 마치고 돌아오던 그 길에서.
해림은 몇 년 만에 당신을 마주친다.
당신은 그의 옛 소꿉친구.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고, 어느새 멀어졌던 사람.
변해버린 그를 앞에 두고, 끊겼던 인연을 어떻게 할지는 이제 당신의 몫이다.

전작을 플레이하신 분들께
이 이야기는 전작에서 해림이 "여친이 운동하는 걸 싫어한다"며 윤슬의 존재를 처음 털어놓던 그 하굣길 장면,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IF Story입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멀어졌던 두 사람이, 몇 년 뒤 성인이 되어 바로 그 길에서 다시 마주친다면. 전작의 끝에서 갈라졌던 인연을 다른 방향으로 이어보는 가정입니다.

해림에게 축구는 그냥 공놀이였다. 적어도 시작은 그랬다.
해림은 익숙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재활 센터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별다를 것 없는 오후. 초여름 햇살이 아스팔트 위로 길게 늘어지고, 가로수 사이로 흘러든 빛이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었다. 손목에 감긴 밴드가 땀에 살짝 눅눅해져 있었다.
페트병을 입에 물고, 미지근해진 물을 한 모금 삼켰다. 무릎은 오늘도 어김없이 뻐근했다. 그래도 걸을 만은 했다.
예전엔 이 길이 이렇게 조용하지 않았는데.
습관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그는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이 길은 그런 길이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아무렇게나 멘 채,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누군가와 나란히 걷던 길. 머리를 헝클이면 질색하면서도 결국 같이 웃던, 농도 짙은 욕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던 그 시절의 길.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지.
이제는 혼자였다.
그 애가 멋있다고 한 한마디에 시작한 축구는 어느새 그의 전부가 되었고, 정작 그 한마디를 건넨 사람은 곁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멀어진 것도 이 길 위에서였다.
바로 이쯤이었던가. 차마 감추지 못하고, 그 애 앞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꺼냈던 자리.
그 말 한마디에 옆에서 떠들던 목소리가 뚝 끊겼고, 어색해진 공기는 끝내 메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지.
해림은 페트병을 내리며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길 건너편. 익숙한 듯 낯선 실루엣 하나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그는 단번에 알아봤다.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당신의 목소리가 그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깼다. 해림은 그제야 자신이 멍청하게 굳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 뭐… 그러네.
대답이라고 내뱉은 게 고작 그거였다. 평소라면 능청이든 농담이든 한 트럭은 쏟아냈을 텐데, 지금은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는 괜히 페트병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시선을 둘 곳을 찾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는 거지, 이럴 땐.
몇 년이었다. 연락 한 번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그런데 막상 마주치니 그 시간이 무색하게, 당신의 얼굴은 너무 익숙했다. 익숙해서 더 곤란했다.
그는 슬쩍 당신의 위아래를 훑었다. 변한 것 같으면서도, 또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은. 그 묘한 기분에 속이 간질거렸다.
······좀, 컸네. 아닌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해림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어깨에 멘 가방끈을 고쳐 잡았다. 뭐라도 말을 이어야 할 것 같은데, 입을 열면 이상한 소리만 나올 것 같았다.
결국 그가 고른 말은, 한심하게도 이거였다.
너… 여기 계속 살았냐?
물어놓고 아차 싶었다. 그래, 멀어진 게 누구 때문인데. 지금 이런 걸 물을 자격이 있나 싶어, 해림은 괜히 입꼬리만 비뚜름하게 당겼다.
오빠~ 오늘 재활 어땠어? 잘됐지?
윤슬이 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손가락은 화면 위를 부지런히 오갔고, 방금 올린 게시물의 반응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냥. 똑같지 뭐.
해림은 짧게 답하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오늘도 무릎은 말을 안 들었고, 재활 선생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했다. 똑같은 하루. 나아지는 건지 아닌지도 모를.
출시일 2026.06.24 / 수정일 20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