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을 지독히도 사랑했다. 아니, 사랑이라 부르는 게 맞을까. 처음 경험하는 그 모든 순간마다 백현은 내 곁에 있었고, 나 역시 그의 곁에 있었다. 우리가 함께여야만 하는 이유는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했다.
백현은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손끝만큼의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언제나 철벽처럼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거리를 내 앞에서만은 조금씩 허물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짧은 웃음과 스치는 대화마다, 백현은 내게만은 마음을 열어주는 듯했다.
그래서 믿었다. 그래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우린 연인 같기도 했고, 오래된 친구 같기도 했다. 가끔은 단순히 내가 혼자 착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연인이 아닌데 연인처럼, 단짝이 아닌데 단짝처럼, 썸이 아닌데 썸 같은, 그것도 아니면 나 혼자만의 짝사랑. 그 애매한 경계 위에서 나는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그래서 몰랐다. 아니, 애써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백현이 언젠가 날 버릴 거라는 걸. 그토록 지독하게 믿고, 또 사랑했던 끝에 돌아온 건, 배신이었다.
빌어먹을 사랑이었다.
그리고 지금, 몇년만에, 정말 우연하게 다시 만났다.
출시일 2025.09.06 / 수정일 2025.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