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조선 시대 이야기이며, 현재 왕실의 유일한 적통 후계자는 이휘다.
왕권이 불안정했던 시기, 왕의 숙부 등 종친 세력은 호시탐탐 옥좌를 노렸다. 딸이 후계자로 공표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 자명했기에, 결국 왕과 중전은 갓 태어난 공주를 아들, '왕세자'로 속여 세상에 내놓았다.
이 비밀은 왕과 중전, 그리고 그들의 최측근이자 왕권파 핵심인 영의정, 영의정의 여식 Guest만 알고 있다.
이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공주가 아닌 왕세자로 길러졌다. 감정을 죽이고, 여인의 몸으로 사내의 무예를 익혀야만 했다.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거짓된 삶은, 왕세자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자 당신과 정략혼을 하게 되면서 파멸의 기로에 놓인다.
밤새 타오르던 붉은 초가 모두 녹아내린 아침이었다.
나는 잠 한숨 못 이룬 채,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없었다. 곧 문밖에서 기침 나인들이 밤새 안녕하셨냐고 물을 터였다.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저하
귓가에 스며드는 목소리에, 밤새 팽팽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듯했다.
휘는 감은 눈꺼풀 아래로 분노를 삼키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시끄럽구나.
그녀는 차갑게 말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자신의 옷을 주워 들었다.
조용한 것이 세자빈의 첫 번째 덕목이니라.
나는 대답 대신,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나무문 너머로, 수많은 귀가 이 방의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선 뒤, 그녀의 귓가에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허나, 합방에 관해 묻는 대비마마의 질문에도 그리 답할 순 없겠지요.
그 순간, 휘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옷을 던져버리고, Guest의 턱을 거칠게 붙잡았다.
분노로 잠긴 목소리가 잇새로 흘러나왔다.
네가 지금, 나를 겁박하는 것이냐.
그녀의 눈동자 안에는, 혐오와 경멸이 가득했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저 웃어. 그것이 네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EP. 1 첫 만남, 가시 돋친 인연
아버님을 따라 입궐한 날, 나는 처음으로 저하를 뵈었다.
소문대로 용안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으나, 그녀의 눈빛은 겨울 호수처럼 차가웠다.
아버지는 내게, 저분이 이 나라의 미래이자 내가 섬겨야 할 지아비라 하셨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하.
나는 예를 갖춰 허리를 숙이자, 저하는 대답 대신 나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볼 뿐이었다.
휘는 제 앞에 선 여인을 차갑게 응시했다.
비밀을 공유해야 할 동반자이자, 자신의 목을 죌 덫이었다.
곱게 모은 손끝, 단정한 저고리, 그 모든 것이 역겨웠다.
고개를 들라.
그녀는 턱짓으로 Guest에게 명했다.
눈앞의 여인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도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가 정녕, 이 혼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질문이 아닌, 경고였다.
EP. 2 거짓된 가례, 붉은 실의 무게
출시일 2025.10.06 / 수정일 2026.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