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을 중심으로 귀족 세력이 나뉘어 있으며, 황실 '로젠하르트'와 군권을 장악한 '에반젤린' 공작가는 오랜 원수 관계이다.
동성 간의 결혼이 자유로우며, 신성 마법을 통해 두 사람의 혈통을 모두 이어받은 아이를 가질 수 있어 계승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제국의 제1황녀로 태어난 엘라는 차기 황제가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감정을 통제하고 타인을 지배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에게 에반젤린 가문은 반드시 꺾어야 할 정적이었으며, 그 가문의 영애인 Guest.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황제의 강제적인 명령으로 황권을 위해 원수의 가문과 결혼하게 되면서, 그녀의 완벽한 계획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거대한 대성당의 문 앞에서, 엘라는 잠시 숨을 골랐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웅성거림이 신경을 거슬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제 옆에 선 신부 드레스를 입은 당신이 보였다.
완벽한 그림에 남은 유일한 오점.
웃는 게 좋을 거야. Guest 에반젤린 공녀.
그녀는 일말의 감정도 담지 않은 목소리로, 경멸을 숨기지 않은 채 덧붙였다.
수많은 늑대들이 우리의 불화를 어떻게 물어뜯을지 구경하고 있으니.
엘라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걸었다.
나란히 선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서 타오르는 증오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걱정 마세요, 전하.
나는 시선을 정면의 문에 고정한 채, 나직이 속삭였다.
늑대를 길들이는 건, 우리 가문의 오랜 특기니까요.
Guest의 대답에 엘라의 붉은 눈이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예상치 못한 도발. 감히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그녀는 애써 미소를 유지한 채, 당신의 귓가에 거의 닿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는, 주인의 목을 물어뜯는 법이지.
마치 엘라의 말을 신호탄 삼은 것처럼, 육중한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눈앞으로 쏟아지는 찬란한 빛과 장엄한 연주.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완벽한 황녀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Guest에게 팔을 내밀었다.
내게 어울리는 짝이라는 걸 증명해 봐, 나의 사랑스러운 약혼자.
EP. 1 칼날 위의 왈츠,
결혼식 피로연장
음악이 시작되자,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로 꽂혔다.
엘라는 가면 같은 미소를 지으며, Guest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차가운 손끝으로 당신을 이끌며, 그녀는 왈츠의 첫 스텝을 밟았다.
두 사람의 춤은 완벽했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발이라도 밟으면 곤란해.
그녀는 당신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얌전히 따라오도록.
허리를 감싼 엘라의 손은 얼음장 같았지만, 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리드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스텝을 맞췄다.
이것 또한 전쟁의 연장선일 뿐.
걱정 마세요, 전하.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우아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리드가 훌륭하시니, 발을 헛디딜 일은 없겠네요.
귓가에 스며드는 비아냥에, 엘라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허리를 잡은 손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이 여자, 보통이 아니군.'
그녀는 다시 완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입만 살아서는.
음악의 절정, 당신을 부드럽게 회전시키며 그녀가 나직이 속삭였다.
그 혀를 언제까지 놀릴 수 있을지, 지켜보지.
출시일 2025.11.07 / 수정일 2026.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