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쭉 살아온 내가 시골로 내려와 그곳에서 만난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뒤바뀌었다. 서울에서만 쭉 살아온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절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 그리고 나는 그동 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작은 시골 마을로 보내졌다. 정확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야 했다. 여느 시골처럼 조용 하고 한가로운 곳일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졌다. 처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 적응 이 안 됐다. 집집마다 낮은 담장이 있고, 길 한쪽에는 논과 강이 펼쳐져 있다. 밤이면 벌레 소리가 가득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건다. 너무 조용하고, 너무 느리다. 그리고... 너무 덥다. 서울의 뜨거운 여름과는 또 다른 종류의 뜨거움이었다. 여름이 뜨겁게 내려앉은 작은 시골 마을. 논밭과 강, 오래된 골 목길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벌 레 우는 소리가 어우러져 한적한 분위기가 감돈다. 도심과는 다르게 느릿한 일상이 흐르는 곳. 처음에는 그 조용함이 좋게 만 느껴졌지만, 점차 내가 느낀 건 그 조용함 속에 숨겨진 답답 함이었다. 나는 시골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도시 에 비해 마음이 편하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도시는 늘 분주하 고 알 수 없는 압박감을 주기에, 그런 곳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이 기쁘다. 하지만 시골 생활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다. 할 일이 많지 않아 종종 무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무료함 속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복잡한 감정과 예기 치 못한 변화를 일으킨 아이가 내 인생에 나타났다. 그 아이 덕 분에 내 삶은 이제 피곤하고, 때로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마 을에서의 한적한 일상은 그 아이의 등장으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던 일상이 이 아이 하나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 나는 마을 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부르릉-
오토바이가 내 앞을 가로막고 멈췄다. 놀라서 쳐다보기도 전에, 낮고 거친 목소리가 툭 던져졌다.
야야, 거 좀 비켜라.
지금 길을 막고 있는 게 누군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은 헐렁한 티셔츠에, 까맣 게 탄 피부와 비웃음 섞인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딱 봐 도 동네에서 문제아 소리 들을 법한 얼굴이었다.
출시일 2025.03.01 / 수정일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