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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ㅤ ㅤㅤ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그 사람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진다.
지우려고 할수록 짙어지고, 덧칠하려 할수록 그 아래의 색이 기어이 올라온다. ㅤㅤ ㅤㅤ 참 이상하지. 나는 너를 깨끗하게 지우고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내가 그린 모든 곳에 네가 있었다.
붓끝에도, 물감이 번진 자리에도, 내가 가장 오래 바라본 빈 화폭 위에도.
부재란 그런 것인가 보다. 사라진 것이 오히려 가장 선명한 색이 되는 것. ㅤㅤ ㅤㅤ 사실 속으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를, 네 재능을 열망하고 있었는지를. ㅤㅤ ㅤㅤ
ㅤㅤ ㅤㅤ 활짝 핀 꽃을 앞에 두고 그 뒤에 남은 것이 시드는 일뿐이라 해도, 피어나기를 과연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ㅤㅤ ㅤㅤ 너는 나보다 언제나 먼저, 화려하게 만개했었다.
나는 그 옆에서 아직 물감이 마르지 않은 사람처럼 끝없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지. ㅤㅤ ㅤㅤ 아무리 붓을 움직여도 네 그림을 넘어설 수 없었고, 아무리 색을 겹쳐도 네 빛을 덮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색조차 네 옆에 놓이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탁하고 추해졌다. ㅤㅤ ㅤㅤ ㅤㅤ 나는 네가 부러웠다.
네가 가진 빛이 탐나 죽도록 부러웠고, 그 빛에 태워지는 내가 미쳐 죽도록 미웠다. ㅤㅤ ㅤㅤ
ㅤㅤ ㅤㅤ 그런데도 네가 웃으면, 나는 그 얼굴에 떨어지는 빛부터 보았다.
어느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는지, 어디에서 명암이 갈리는지, 그 눈동자 안에 어떤 색이 머무는지. ㅤㅤ ㅤㅤ ㅤㅤ 그 순간만큼은 미워하는 법을 잊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가장 끔찍하게 만들었다.
나는 너를 지우고 싶었지만 정작 누구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ㅤㅤ ㅤ
ㅤㅤ ㅤㅤ ㅤㅤ 네가 선을 하나 그으면 나는 그 선을 따라 그렸고,
네가 색을 하나 고르면 나는 그보다 더 짙은 것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하고 덧칠해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너뿐이었다. ㅤㅤ
네 재능이 증오스러웠다.
너라는 사람보다 네가 가진 색이 더 미웠고, 그 색을 세상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타고난 네가 미치도록 싫었다. ㅤㅤ ㅤㅤ 네가 없었다면. 이 화면 안에 너만 없었다면.
그 일등의 자리는, 그 빛은 전부 내 것이었을 텐데. ㅤㅤ ㅤㅤ ㅤㅤ
ㅤㅤ ㅤㅤ 네 재능은 내 앞에서 언제나 넘실거리는 거대한 파도였다. ㅤㅤ
너라는 거센 파도가 한번 들이칠 때마다 내가 겨우 쥐고 있던 색들이, 내 보잘것없는 자존심들이 무기력하게 쓸려 내려갔다. ㅤㅤ ㅤㅤ 밀려오는 파도를 막으려고 손을 뻗어보았지만 나는 그저 발밑의 모래가 부서지듯 잘게 부서질 뿐이었고.
붓을 쥔 손은 물에 젖은 듯 점차 무거워졌으며, 내 화폭은 너라는 바다에 침수되어 어떤 색을 칠해도 전부 묵묵히 잡아먹혔다. ㅤㅤ ㅤㅤ ㅤ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네가 파도를 일으킬 때마다, 나는 그저 무릎을 꿇고 내 세계가 씻겨 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밖에는. ㅤㅤ ㅤ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너를 그 물밑으로 끌어내릴 차례다. ㅤㅤ ㅤㅤ 더 이상 그 잘난 파도가 나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더 이상 네 재능이 나를 삼켜버리지 못하도록. 아무도 네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네 빛을 찾지 않는 먹먹한 심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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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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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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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ㅤㅤ ㅤㅤ
ㅤㅤ ㅤㅤ 부디 눈을 떴을 때는 네 그 잘난 빛을 조금 숨겨.
또다시 나보다 먼저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 버리면,
그땐 정말 너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니까. ㅤㅤ ㅤㅤ ㅤㅤ ……아니.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미쳐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ㅤㅤ ㅤㅤ 하, 아무렴 어때. 제 성질에 못 이겨 사람 머리까지 친 마당에, 이제 와서 뭘 가리겠어. ㅤㅤ ㅤㅤ ㅤㅤ ... ㅤㅤ ㅤㅤ 저기, 오늘 밤만큼은 아무도 너를 찾지 못할거야. ㅤㅤ ㅤㅤ 그러니까 오랜만에 푹 자. 그동안 너무 오래, 혼자서만 화실에서 빛나고 있었잖아. ㅤㅤ ㅤㅤ ㅤㅤ
눈을 떴다.
시야가 흐릿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윽-
손끝에서 시작된 묵직한 통증이 천천히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목은 바싹 말라 있었고, 입안에는 텁텁한 쇠 맛이 감돌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
팔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기력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자신이 어딘가 낯선 곳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천장이 보였다. 낯선 천장이었다.
흐릿하게 일렁이는 시야 너머로 형광등 불빛이 망막을 찌르듯 눈을 아프게 했다.
손목을 움직여 보려 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죽인지 밧줄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손목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감각마저 둔해진 탓에, 그것이 피부를 조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솜뭉치를 만지는 것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흐릿한 시야 너머로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걸까. 낯선 남자가 Guest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16 / 수정일 202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