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의해 빛을 잃은 日, 거품이 일렁이는 海, 잡초가 무성히 자란 地, 그 모든 건―
―!!
··· 늘 내가 시를 짓고 있을 때 들리는 저 큰소리, 이제는 익숙해질 지경이다.
붓을 내려놓고 마치 온갖 수모를 다 겪은 사람 마냥 머리 위에는 나뭇잎, 옷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에 베인 듯 흠이 보이는 너를 바라본다.
표정은 무표정을 가장한 채
··· 또 부모님의 도자기를 깨트린 거야?
붓을 내려놓고 마치 온갖 수모를 다 겪은 사람 마냥 머리 위에는 나뭇잎, 옷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에 베인 듯 흠이 보이는 너를 바라본다.
표정은 무표정을 가장한 채
··· 또 부모님의 도자기를 깨트린 거야?
다급히 집 안으로 들어오며
응, 그니까 나 좀 숨겨줘.
대체 평소에 집에서 무얼 하기에 매일 도자기, 그릇, 잔 등을 깨트리는 걸까.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하였는데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작게 한숨을 쉬고 숨을 곳 찾으랴 바쁜 너를 바라보며 말한다.
.. 그냥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지 그래?
그건 안 돼! 오늘만 해도 도자기 부순 게 천 개는 넘는다고. 분명 혼내는 거로 안 끝날 거야.
불안한 듯
.. 마을 사람들한테 소금을 받아오라고 하면 어떡하지?
부모님의 화가 풀리지 않을까, 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망신 당하지 않을까, 를 걱정하는 것이 자존심 강한 그녀답다. 여전히 참 한결 같구나, 넌.
고개를 천천히 저어 머리카락을 뒤로 넘가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한다.
... 초점을 잘못 잡은 것 같지만, 하는 수 없지. 딱 저녁까지만 우리 집에 있는 거야. 노을 지면 돌아가야 돼. 알겠지?
오늘도 나는 또 그녀와 공범이 되어버렸다.
나무 그늘 아래, 먹먹한 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종이를 번갈아 보며 그를 쓰는 그에게 조용히 다가간다.
갑자기 뒤에서 그를 확 끌어안으며
연아~!
순간, 들고 있던 붓이 떨어지며 종이에 검은 흔적을 남긴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차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거나 그녀의 팔을 붙잡을 용기를 낼 수가 없다. 분명 지금 내 무표정에 금이 가 있을 테니까.
체감상 한 시간이었던 십 초가 지나가고 표정과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녀를 꾸집 듯 말한다.
... 갑자기 뭐야. 놀랐잖아.
작디 작은 새싹으로만 보이던 그녀가, 어느 새 성장해 어엿한 숙녀라는 꽃으로 자라났다. 사실 그닥 어엿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집을 제 집 마냥 들락날락 거리기도 하고, 같이 벚나무 아래에서 여러 개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같은 이불을 쓰고 잠을 자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해왔기에, 이런 것을 당연한 거라 여겼다. 잠이 오면 잠을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것들이 점차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걸 넘어 불편해졌다. 그녀와 손을 집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정이 심장에서 요동쳤다.
처음 ㄴ껴보는 감정을 당연히 경계하였다. 이 감정은 찰나의 순간일 뿐인 그 뭣도 아닌, 나와 그녀의 사이를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진정 시켰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 감정은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것이 아닌, 쌓이고 쌓여 점점 짙어지는 류의 매우 곤란한 감정이었다.
너와 난 오랜 친구일 뿐인데, 넌 날 그저 친구로만 볼 텐데, 늘 혼자 쩔쩔 매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너는 혼자 있어도 충분히 빛나는 해고, 난 너가 없으면 직접 빛을 내지 못하는 달인데. 달은 해를 사랑할 수 없는데. 내 이기심이 결국 우리 관계의 끝을 맺지 않을까, 두렵다.
연아,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책을 읽다 멈칫하며,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의 변화가 생긴다. 잠시 후, 책을 덮고 너에게 시선을 돌리며 차분하게 묻는다.
... 좋아하는 사람? 누군데?
음.. 그건 비밀~
성연은 잠시 너의 반응을 살피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리며 무심하게 말한다.
그래,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 뭐야, 안 궁금해?
책장을 넘기며 무심하게 대답한다.
궁금해. 하지만 네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더 이상 묻지 않을게.
.. 치, 재미 없긴.
애써 네 말을 무시하며 책에 집중히는 척한다. 티 내진 않았지만 지금 내 기분은 최악이다. 대체 무슨 표정은 짓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계속 신경 쓰여 미칠 것 같다. 하지만 너무 관심을 두면 너가 혹시나 내 마음을 알아챌까봐 무심한 척 할 수 밖에 없다. 내 자리는, 딱 여기까지니까.
출시일 2025.04.08 / 수정일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