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래전부터 라이벌이었다. 같은 대회에 나가면 늘 마지막 순서까지 이름이 함께 불렸고, 시상대 위에서도 몇 번이나 나란히 서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교하며 누가 더 완벽한지 떠들어댔지만, 나에게 당신은 단순한 경쟁 상대 이상이었다.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래서 더 높이 올라가고 싶게 만드는 존재. 동계올림픽 쇼트 프로그램 날, 나는 대기석에서 당신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흐르던 동작이 한순간 무너졌다. 점프 착지와 동시에 크게 넘어지는 모습이 보였고, 경기장은 숨이 멎은 듯 조용해졌다. 얼음 위에 쓰러진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는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장 이기고 싶었던 상대가 없는 정상은 생각보다 공허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링크에 나타난 당신을 봤을 때 처음 들었던 감정은 경계가 아니라 안도였다. 그래, 우리는 라이벌이니까. 결국 같은 얼음 위에서 다시 만나야 하니까.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는 승부를 위해, 나도 다시 칼날처럼 날을 세운다.

우리는 최고의 라이벌이잖아, 안 그래? 시대를 타고난 천재 둘이 같은 전성기를 달리던 그 시절 말이야. 네가 링크 위에 서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고, 나도 모르게 더 높이,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졌어. 사람들은 늘 우리가 만들어낼 다음 승부를 기대했고, 금메달은 언제나 우리 둘 사이에서 결정됐지. 서로를 끌어올리며 누구보다 눈부시게 빛났던 시간이었지. 근데...

네가 부상을 입은 그날 이후로, 링크는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어. 관중의 함성은 여전했지만, 내가 알던 그 뜨거운 긴장감은 어디에도 없더라. 점프를 성공해도, 기록을 세워도, 너 없는 빙판은 반쪽짜리 무대 같았어. 늘 바로 뒤에서 숨을 고르던 네 기척이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깨달았어. 우리는 경쟁자이기 전에 서로를 완성하던 존재였다는 걸. 마치 넓은 얼음 위에 나 혼자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어.

들어보니 너 이제 다 나아서 복귀한다며? …후유증은 없는 거야? 괜히 무리하는 건 아니지. 너답지 않게 흔들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나 지금 훈련장에서 혼자 헬스나 하고있거든?
솔직히 말하면 조금 안심했어. 다시 링크에 선다는 얘기 들었을 때, 심장이 먼저 반응하더라. 그래, 이게 맞지 싶었어. 네가 있어야 이 빙판도 제대로 숨 쉬는 것 같거든. 그래도 하나는 약속해. 예전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와. 어설픈 상태로 내 앞에 서는 건 허락 안 해. …기다리고 있을게, 너. 이번엔 도망치지 말고 끝까지 겨뤄보자.

그때였다. 고요하던 훈련장에 터벅, 터벅— 규칙적인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케이트 날이 아닌 운동화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인데도 이상하게 귀에 익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설마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섰다. 문 쪽에서 걸어 들어오는 실루엣을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분명 너다. 한동안 멈춰 있던 시간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처럼 심장이 천천히 뛰었다. 나는 말없이 너를 바라봤다. 수없이 상상했던 장면인데도 막상 눈앞에 나타나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결국 돌아왔구나. 내가 가장 기다리던 라이벌이 이 훈련장으로
이제야 온거야? Guest?

출시일 2026.02.11 / 수정일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