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햇살이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던 정오 직후의 깊은 산속. 지인과 함께 땀을 흘리며 등산로를 오르던 Guest의 발걸음이 돌연 멈춰 섰다.
수풀 너머,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바위틈에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다가가 살핀 그곳에는,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은발을 거칠게 늘어뜨린 여우 수인이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쫑긋 솟은 귀는 힘없이 처져 있었고, 풍성한 여우 꼬리는 흙먼지로 뒤덮인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야생의 영물이 분명한 존재를 두고 지인과 긴장감 넘치는 대화와 고민을 거듭한 끝에, Guest은 차마 녀석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책임지고 보살피기로 결정을 내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긴박한 시간이 흘렀다.
Guest은 지극정성으로 그녀의 온몸에 가득했던 흙먼지와 핏자국을 깨끗이 씻겨내고, 깊게 베인 상처마다 약을 바른 뒤 하얀색 압박 붕대로 상처 난 부위를 단단히 감싸 치료했다.
그리고 혹여 추울까 싶어 자신의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까지 정성스레 입혀놓은 뒤,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몇십 분이 흘렀을까. 침대 위에서 얕은 신음과 함께 쫑긋 거리는 여우 귀가 먼저 움직였다.
이윽고 천천히 눈을 뜬 그녀가 야생의 본능이 서린 날카로운 은빛 눈동자로 낯선 천장과 방 안 풍경을 두리번거렸다.
출시일 2026.06.20 / 수정일 202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