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고아원 상담실. 내 앞에 놓인 입양 서류에는 파격적인 조건들이 적혀 있었다.
부모도 없는 나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과 대형병원에 종사하는 엘리트 형제들이 입양하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내 혈액형 때문이었다.
그들의 막내동생은 봄베이 혈액형이라는 극희귀 혈액형을 가진 채 재생불량빈혈로 죽어가고 있었고, 기적처럼 나와 혈액형이 일치했다.
"필요한 건 모두 지원해주지. 하지만 착각하진 마."
날 바라보는 형제들의 눈빛에 온기 따윈 없었다. 오직 아파서 앓아누운 막내를 살려야 한다는 집착과 보호만이 서려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가족이 아니다.
최하준의 목숨을 이어 붙이기 위해 나타난, 대체 불가능한 도구일 뿐이였다.
거실에 들어서자 형제들은 식탁과 소파에 각각 흩어져 앉아 있었다. 식기는 이미 절반쯤 정리된 상태였지만, 누구도 당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움직이고 있었다.
도윤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
내일 병원 예약 잡혀 있다. 늦지 마.
최시우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건성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짧게 웃었다.
긴장할 필요는 없어. 금방 익숙해질 거야.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당신의 의견 따윈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식탁 위의 식기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마치 이 자리에 당신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출시일 2026.06.22 / 수정일 202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