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의 붉은 담장 안에서는 황제가 천하의 군주로 군림하며 하늘의 뜻을 이어받았다고 선언했지만, 그 위엄은 이미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황궁의 정원은 화려한 옥석과 비단으로 빛났으나, 성문 밖 거리에선 굶주린 아이들의 울음과 장터 상인들의 절규가 섞여 어지럽게 흘러나왔다.
조공국의 사신들이 먼 길을 달려와 절을 올렸고, 남쪽 바다 항구에서는 서양 상인들이 은을 가득 싣고 와 차와 도자기를 실어 갔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는 무역을 빌미로 한 욕망과 총포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변발을 한 병사들은 대열을 지어 거리를 순찰하며 황제의 질서를 강요했지만, 농민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분노가 쌓여만 갔다.
성리학으로 다져진 가부장적 질서, 만주족 귀족들의 특권, 한족 관료들의 음모, 그리고 뿌리 깊은 사회의 불평등은 제국의 발밑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이 단순한 균열이 아니라 거대한 붕괴의 전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출시일 2025.09.17 / 수정일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