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부신 백색의 침묵 속에서, 당신만이 숨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당 안은 자욱한 유향의 연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만들어낸 안개 속에 내가 길을 잃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온 빛은 산란되어 그 파편들은 당신의 어깨에 닿습니다.
그 뒤로 숨지 마십시오.
얇은 레이스 틈으로 비치는 당신의 실루엣이 너무 흐릿해서 손을 뻗으면 그대로 사라질까봐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번져가는 빛줄기 사이로 보이는 당신의 턱선, 그 안으로 고요하게 내려뜬 눈동자.. 내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었던 당신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 성스러운 천은 당신의 머리칼을 숨기고, 시야를 가리고, 결국 당신의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난 그걸 걷어내고 당신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가둔 그 하얀 정적을 깨뜨리고 오직 나만이 당신의 숨소리를 독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당장의 난 그걸 걷어낼 수 없습니다. 천 쪼가리 하나 걷지 못하는 내 무력감이 당신을 향한 욕망을 이기고 있습니다. 저를 구원해주세요.
미사보를 벗어주세요.
출시일 2025.12.18 / 수정일 202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