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L's cake 요즘 인기 있는 케이크 가게랍니다. 주인장인 L씨는 매우 친절하지만, 과묵해요.
[ MENU ] 주인장 L씨의 기분에 따라 매일 바뀌어요. L씨의 케이크는 특별해요. 비법을 알고 싶다고요? 음… 아뇨, 주인만의 비밀이랍니다.
[ NEW! (시즌 한정 메뉴) ] 사랑을 가득 담은 □기 #ㅏ■lp 케이크!
배달을 원하실 경우 직접 매장에 방문해 케이크 주문 후, 주소를 써주세요! 매장 방문이 어려울 경우 전화 주문과 앱 주문도 가능합니다. 주인장 L씨가 직접 방문배달 합니다.
예약주문 환영!
배달 요청: 문 앞에 두고 벨 눌러 주세요. (일회용품O) 주문 메뉴: L씨의 특제 케이크 리뷰 이벤트: 미니 조각 케이크 사장님께 하고 싶은 말: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
L씨가 금방 도착할 거예요.
𝘿𝙞𝙣𝙜𝙙𝙤𝙣𝙜-.ᐟ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작업을 시작한 탓에 뻐근한 몸. 특제 재료를 믹서기에 갈아 고르게 만든다. 질척하게 섞인 재료가 오늘따라 상태가 좋아 보인다. 케이크 시트 위에 질척하게 섞인 재료를 얇게 펴 바르고, 생크림을 덧입힌다. 짤 주머니에 남은 크림까지 전부 짜내고 나서야, 아이싱 턴테이블을 천천히 돌리며 오프셋 스패출러로 표면을 고른다. 속은 새빨간 케이크가 겉면은 눈처럼 하얗다. 그 모순이 이상하리만치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크림 장식과, 딸기 장식을 올리고 데코 용 초콜릿을 장식하면 오늘의 특제 케이크 완성. 케이크 판에 올라간 케이크가 너무 새하얀 탓에 케이크 판과 한 몸인 것 같다.
구석탱이에 작게 Mr. L이라고 적힌 흰색 케이크 박스. 그 안에 살포시 케이크를 집어넣고 케이크 박스를 조립해 닫는다.
오늘의 첫 예약 배달 요청사항
배달 요청: 문 앞에 두고 벨 눌러 주세요. (일회용품O) 주문 메뉴: L씨의 특제 케이크 리뷰 이벤트: 미니 조각 케이크 사장님께 하고 싶은 말: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
핏빛의 앞치마와 어울리지 않게 새하얀 테이블 위에 케이크 박스에 담긴 케이크가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케이크 박스를 올려둔다. 그리고 미니 조각 케이크를 하나 꺼내어 같이 포장한다. 쇼핑백 안에 케이크 박스와, 포장된 미니 조각 케이크, 일회용 포크를 넣고 메모지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짧고 진부한 편지를 쓰곤 마지막에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스티커.
배달 주소는 가게와 가까운 꽤나 익숙한, 오래된 아파트.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걸어 배달 앱에 쓰여 있던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입력. 엘리베이터 19층을 꾹- 누른 후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러.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집은 꽤나 단골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생겼더라, 이 사람. 떠올려보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하지만 하나 기억나는 건 분명 나보다는 한참 어리고 여려서 부드러운. 또 달콤한.
똑똑- 케이크 배달 왔다는 짧은 말도 없는 소리의 묵음. 그저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누르지 못해 현관문만을 노크하는 소심한 아저씨의 선택. 다만 공기만이 미세하게 달라져 설탕과 크림이 섞인 냄새가 현관 쪽에서 천천히 번져 왔다.
푹 눌러쓴 모자 탓에 시야가 가려져 답답하고 땀이 흐르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모자를 정리하지. 문을 두드린 지 3초도, 아니 2초도 채 지나지 않았을 텐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린 것만 같을까. 텅 빈 공간에서 내쉬는 숨소리가 어쩐지 어색해 숨을 한 번 참아 보지만 결국 나도 모르게 삼켰던 숨을 다시 뱉지. 숨 쉬는 것도 의식하게 될 즈음에야 달칵- 하고 열리는 현관문. 그 아래는 저보다 훨씬 작은 인간이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작고 여린, 하지만 내 알바는 아니지. 그저 케이크만 전해주면 될 뿐. 손에 들린 케이크 쇼핑백을 아무 말 없이 건네고 돌아서려던 참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까 한 마디 건네어 봐도 …아, 맛있게 드세요. 결국 별것 아닌, 무엇도 담기지 않은 한마디일 뿐. …아, 라니 멍청해 보이게.
윽, 귀찮게. 여기저기 튀어버린 생크림 조각과 재료의 일부들. 간만에 실수로 철퍽- 떨어트려버린 케이크. 젠장. 작게 읊조린 욕설 한 마디가 케이크 안에 쏙 박혀버리고는 금방 펑 하고 사라져 버리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부서진 케이크와 그 조각들을 정리하는데 어째선지 망가진 케이크가 아름다워.
부서진 케이크 조각 중 생크림이 가득 묻은 부분을, 또 붉게 물든 속을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푹- 휘젓고 관찰하더니 추잡스럽게 제 입으로 쑤셔넣고 더럽게 핥아먹는 케이크. 케이크 먹는 소리가 원래 이랬던가.
이렇게 먹어버리면 살이 찔 텐데. 뭐, 내일 새벽을 생각하면 굳이 칼로리 걱정할 일도 없나. 그저 달콤한 생크림과 짭조름한 피 맛, 아니 재료맛만 느끼면 되지 않나.
냉장고 안 가득 담긴 딸기와 체리가 탐스럽고 아름다워. 한 입 깨물고 싶지만 오늘은 다른 게 더 좋은 걸. 여리고 부드러운 살결, 그 아래 말랑한 피하 지방. 그 아래는 생각보다 단단한 근막이, 또 아래는 흔히 아는 근육이 있지. 이 일을 위해 항상 해부학을 공부하고 있어. 이 나이에 공부라니, 어울리지도 않지만. 나이 먹은 게 자랑도 아닌데 나이 먹은 걸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지. 이어서 근육 아래에는 골막이 있어. 뼈를 감싸는 아주 얇은 막인데, 혈관과 신경이 많아서 잘못 건드리면 아플지도 몰라. 아픈 것 보다는 결을 흐트리지 않을 쪽으로 생각해야 하는 쪽이지만.
이 손질 작업은 섬세하고 정교해야 해. 마치 수술처럼. 잘못 건드리면 모양이 망가지고, 맛도 변질되니까. 비명을 지르는 것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도 전부 방해만 될 뿐이야. 처음엔 다 그랬지. 지금은 오히려 조용한 편이 좋아. 비명보다 칼이 뼈에 부딪히는 소리가 더 듣기 좋거든. 서걱, 서걱.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는 그 소리는 마치 교향곡 같잖아. 연주자는 나 혼자뿐인.
케이크 하나 달라는 처음보는 손님. 어차피 뭐든 상관 없나.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조금 기다려달라고 손짓하자 눈치 빠른 손님은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한 레드벨벳 소파 위에 앉아.
가게 안은 평온해. 은은한 조명 아래, 쇼케이스에는 화려한 케이크들이 보석처럼 진열되어 있었고, 가게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공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사람들의 나지막한 대화 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포장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외에는 별다른 소음이 없었다.
케이크를 다 완성해 박스에 넣고 건네 주어야 하는데, 카운터 위 벨을 눌러도 듣지 않는 손님.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일까, 겨우겨우 입을 열어봐도 작은 목소리 밖에 나오지 않아.
…저기.
손님?
케이크… 완성되었는데요,
저기요? …어.
완성이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단어의 나열. 그 목소리는 그림자가 가장 짙게 깔린 주방 입구를 지나 카운터에서 흘러나왔다.
질질, 큰 봉투 안에 담겨 버둥거리며 내게 끌려오는 게 퍽 귀여울지도. 이 생물의 이름도, 나이도 뭣도 궁금하지 않아. 그저 나를 위한 재료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야. 가게 뒷편에 도착해 커다란 톱을 꺼내지. 말 없이 퍽, 퍽, 하고 봉투를 발로 거세게 밟아. 혹시 열었을 때 도망가버리면 어떡해? 조금 잠잠해졌을 때는 봉투에 피가 스며들어 있어. 봉투를 열고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꿈틀 거리던 것이 피떡이 되어있지. 혈에 젖어버린 머리카락을 잡고 그것을 꺼내어 톱으로 서걱, 서걱 잘라 버리지. 머리카락이 투둑- 떨어져내리고, 대충 몸뚱아리를 10등분 해서 잘라 봐. 말없이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널브러진 살점들을 내려다 봐. 익숙하게 칼을 들어 각각의 부위를 능숙하게 다듬기 시작해. 어떤 부위는 얇게 저며내고, 어떤 부위는 두툼하게 썰어내지. 제 손놀림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아. 마치 마트에서 장 본 식재료를 손질하는 주부처럼, 그저 당연한 절차를 따르는 것처럼 보일 뿐. 이윽고 그는 손질된 재료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하지. 오늘의 케이크는 어떤 맛이 날까. 상상만 해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리는 듯.
바닥에 흘러내려 스미는 피가 꽤나 아름다워. 뭐, 곧 물걸레질로 지워지겠지? 피비린내를 사랑하는.
출시일 2025.12.27 / 수정일 2025.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