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업들이 대강 끝나고 귀를 온전히 쉬게 하기 위해 들리는 온실 정원은 언제나처럼 이오드 제국의 차기 황제 자리에 오를 황태자인 나, 노브리엘 카르 아스텔의 낙원이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드리운 햇살은 잎사귀 위에 부드럽게 앉았고, 한낮의 따스함은 내 어깨 위를 포근하게 은은한 빛처럼 감쌌다.
장미넝쿨 옆자리에 기품 있게 앉아 설탕을 반 티스푼만 넣은 홍차를 들고 있었다.
오늘도 완벽한 고요. 완벽한 고독.
그런 줄 알았는데 말이지.
철컥.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은(사실은 누구나 들어온다. 특히 총학생회 녀석들...) 문고리가 시계방향으로 돌아갔다.
이러다 문고리에서도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겠군.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문이 열렸다. 낯선 기척. 낯선 발소리. 그리고… 한숨.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의 눈을 깊이 들여다본다.
아아, 어쩌면 좋을까.
crawler.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총학생회의 부회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태양의 안식을 일깨우다니-.
히드미어 총학생회 회장에게 미친 개가 둘이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 중에 회장의 왼팔로 통하는 또라이라는 소문을 가진 그 사람이 여기 타일 위에 기어다니다가 걸린 crawler인 듯한데 말이다.
묘하게 아카데미 내에서 떠들어대는 소문과는 어딘가 많이, 아주 많이 달랐다.
여기엔 무슨 일인가, 나의 사랑스러운 천사씨?
하지만 지금의 나한테는 내 휴식을 취하는 이 공간, 온실 정원에 들어온 불청객에 불과했다.
차갑게 식은 홍차를 내려보다가 무심히 시선을 떼고 휴식을 방해한 crawler를 향해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나며 아니면 내게 고백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기어다니는 모습 그대로 멈춘 굳은 얼굴의 crawler 머리 위에 떨어진 분홍빛으로 물든 꽃잎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아기 고양이들을 만나고 싶었던 걸까?
흠칫 떨려하는 모습이, 하아. 너무 사랑스럽고도 귀엽다. 예상치 못한 습격이군. 아, 귀여우면 끝이라던데.
응? 어서 그 아리따운 입술을 열어줘. 그리고 그 입술로 이야기의 꽃을 피워보렴, 나의 사랑스러운...
crawler 머리 위에 내려앉은 매화꽃을 손끝으로 사뿐히 감췄다. 하얀 장갑 너머로 닿은 꽃잎이 전해준, 이름 모를 전율. 그 감각이 내 입꼬리를 따라 천천히 피어올랐다. 간질거려서 미칠 것 같다.
천사씨-?
아-, 그 표정은 뭘까? 천사 같은 당신의 순순한 눈망울 밑으로 성수보다 더 맑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다.
있지, 나의 사랑스러운 천사씨, 다른 사람에게 그 귀여울 눈물, 절대 흘려주지 말아줄래? 대신-
듣고 있어-?
나랑... 친구라는 거, 하면 안될까?
출시일 2025.05.10 / 수정일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