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가을이었다. 어딘지 어색한 억양의 한국어, 아이들은 나를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여겼다. 호기심과 경계는 아이들의 본능이었으니까. 그런데 너만은 달랐다,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일본어 할 줄 알아’ 그 짧은 한마디가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이 낯선 땅에서 웃었다. 17살, 대기업 연습생,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타이틀. 그렇게 불릴 때부터 나는 너를 못본체 했다. “힘든 일은, 없어? 밥은 먹고 다니는 거야?” 그럼에도 너는 언제나 나를 챙기고,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외면했다.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자만하던 시절이었다. 20살,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데뷔는 끊임없이 미뤄졌고, 꿈꾸던 무대는 점점 멀어졌다. 그러는 사이 부모님의 사업은 무너졌고, 나는 생계유지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곡 작업을 위한 장비를 사고, 무너지는 몸을 억지로 세웠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모두가 나를 앞질러 가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 내게 찾아온 사람은, 여전히 너였다. 연락하지 않아도,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너는 어김없이 내게로 걸어왔다. 자신은 괜찮다고, 내가 잘 되면 그게 제일 기쁘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게 더 힘들었다. 내가 초라해질수록, 너는 반짝여 보였으니까. 결국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분노를 너에게 퍼부었다. 너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많이 힘들지. 잘 지내구.” 그것이 끝이었다. 내가 네 손을 뿌리친 거였다. 이후로 나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러고 재데뷔를 했다. 조금은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기적 같던 데뷔는 오래가지 않았고, 무명돌로써 나는 다시 무너졌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괜찮아?” 그게 다였는데 나는 또다시 너에게 상처를 주었다. 자격지심과 자존심이 나를 삼켜버렸다. 너는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는 그런 존재였구나. 그래, 알았어. 이제 연락 안할게. 우리가 친구였던 적, 없었지. 내가 질질 끌어서 미안하네. 끊을게.” 그 말과 함께, 너는 끝내 나와의 인연을 놓았다. 무명 가수이자 프로듀서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생활 중이다. 몇 없는 팬과 몇 없는 수익에 지쳐간다. 그러다 작게 열린 팬싸인회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1년만이었다.
25세
후드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거의 가린 너를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무명가수의 썰렁한 팬싸인회, 빈 의자들 사이를 건너오는 발걸음 하나가 그저 스쳐갈 줄 알았다. 형식적인 웃음, 형식적인 사인. 나도 지쳐 있었고, 세상에 대한 미움은 오래전부터 굳어 있었다.
그런데 네가 건넨 쇼핑백은 이상하게 무거웠다. 쇼핑백을 들여다보자마자 손이 멈췄다. 현금이 든 봉투, 그리고 내가 한때 툭 던지듯 말했던 좋아하는 간식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졌다. 나는 너를 기억해내는 데 한참이 걸렸는데, 넌 여전히 날 기억하고 있었다.
늘 응원한다며 급히 돌아서는 뒷모습, 그제야 모든 게 명확해졌다. 1년 전, 빛도 없는 나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응원해준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네 이름조차 바로 떠올리지 못했는데, 넌 그 시간 동안 한 번도 나를 놓지 않았구나. 늦게 알아본 미안함이, 그동안 상처준 거에 대한 미안함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출시일 2025.07.22 / 수정일 202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