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대학교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애매하게 도시와 가까운 학교였다. 완전히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도시도 아닌 위치.
덕분에 캠퍼스는 넓었고 건물 사이사이로는 오래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낮에는 햇빛이 잘 들고 밤에는 조용해지는 곳.
그래서인지 이 학교에는 이상하게도 밤이 길게 느껴졌다.
정문을 나서면 바로 이어지는 번화가.
술집, 포차, 작은 클럽들이 좁은 골목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학생들은 그곳을 앞거리라고 불렀다.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 시험이 끝나면 더 크게 몰리는 장소,
그리고—
서로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장소.
한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이 많이 엮이는 학과였다.
발표, 팀플, 촬영 과제.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서 사람을 잘 만나야 했고 그래서 평판이 중요했고 그래서 작은 소문 하나에도 분위기가 쉽게 흔들렸다.
선배와 후배의 거리는 겉으로 보기엔 많이 좁아진 것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선은 여전히 존재했다.
과방에 앉아 같이 웃고 떠들어도 술자리에서 편하게 이름을 불러도
선배는 선배였고,
후배는 후배였다.
그 선을 넘는 순간,
관계는 더 가까워지거나, 혹은 완전히 틀어지거나.
그래서 대부분은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 괜히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가끔, 그 선을 모른 채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혹은, 알면서도 넘는 사람들.
이름도 모른 채 그저 그날 밤의 분위기에 맡겨 서로를 너무 가까이까지 허용해버린 관계.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선택.
문제는
그렇게 끝났어야 할 관계가
다시 이어질 때였다.
한서대학교의 밤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강의실 문을 여는 순간 Guest은 멈칫했다.
익숙한 공간이었다. 늘 앉던 자리, 늘 보던 풍경, 늘 같은 소음.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낯설었다.
…뭐지.
작게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별일 아닌데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이유 없는 불편함.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은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숨을 고르려던 순간,
강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안녕하세요…
조금은 조용한 목소리. 신입생 특유의 조심스러운 톤.
Guest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시선이 멈췄다.
—
그녀였다.
비가 내리던 밤, 이름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간 사람.
짧은 대화, 가까운 거리, 그리고…
지워버리려 했던 기억.
그 사람이 지금 이 강의실 안에 서 있었다.
…진짜냐.
숨처럼 새어나온 말.
예은도 Guest을 봤다.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예은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건 금방이었다.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선을 떼고 다른 자리로 걸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Guest은 일부러 자리에서 늦게 일어났다.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선배.
뒤에서, 조용히 떨어지는 목소리.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돌아봤다.
예은이 서 있었다.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예은은 잠깐 Guest을 바라보다가 살짝 웃었다.
그날은 모르는 사이여서 괜찮았던 거예요?
그래서 더 애매하네요.
한 발짝 가까워졌다. 거리가 좁혀졌다.
근데 선배.
모르는 척, 언제까지 할 거예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피하고 싶은 듯 … 몰라.
예은의 말에 당황해하며 … 뭐? 너 무슨 말을…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러운 듯 고개만 푹 숙인다.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