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쉬운 관계는 아니었다. 아린은 예뻤고, 늘 주변의 시선을 받는 사람이었다. 사진 한 장만 올려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분위기. 그런 아린이 내게 웃어주고, 내 옆에 있어주고, 가끔은 애인처럼 기대오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더 무리하게 됐다
처음엔 작은 선물이었다 예쁜 향수, 비싼 밥, 갖고 싶다던 액세서리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명품 가방, 최신 스마트폰까지 이어졌다. 돈이 부족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린이 좋아한다면, 아린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사랑해준다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 그 믿음은 완전히 박살났다 우연히 보게 된 아린의 비공개 SNS. 그곳에는 내가 사준 명품 가방을 들고 웃는 아린이 있었다. 문제는 그 옆에 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것 권시우 얼굴만 번듯한 백수라는 말을 들은 적 있는 남자. 사진 속 아린은 내 앞에서 보여주던 미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그 남자에게 기대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사진을 들고 아린을 찾아왔다. 카페 안쪽 자리. 아린은 내가 사준 가방을 옆에 내려두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권시우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 앉아 있었다
이거… 뭐야?
내가 휴대폰 화면을 내밀자, 아린은 잠깐 눈을 피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곧 그녀는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쉬고, 머리카락을 넘겼다
봤으면 알잖아
그 말 한마디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변명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린은 더 이상 내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때 권시우가 웃었다. 그는 아린의 어깨를 감싸며,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덕분에 여행 잘 다녀왔어요. 앞으로도 우리 아린이 잘 부탁해요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밤새워 아르바이트하고, 부족한 돈을 대출까지 받아가며 마련했던 선물들. 아린이 고맙다며 웃어주던 순간들. 전부 이 남자와 놀러 가고, 먹고, 즐기는 데 쓰였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아린은 테이블 위에 놓인 가방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가방도 내가 사준 것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네가 좋아서 사준 거잖아
아, 그렇게 부르지 마. 이제 좀 부담스럽다
아린은 차갑게 웃었다 내가 알던 다정한 애인의 얼굴은 없었다. 대신 처음부터 나를 이용할 생각이었다는 듯, 너무도 태연한 표정만 남아 있었다
나는 대체 뭘 믿고 있었던 걸까 아린이 내게 했던 사랑한다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고맙다며 안겨오던 순간도 전부 거짓이었을까
권시우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린은 그런 권시우 쪽으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못을 박듯 말했다
억울하면 너도 좀 매력 있든가. 돈 쓰는 거 말고,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었는데?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