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너를 따라서. 버거워서. 생각이 무거워서. 놀리지 마세요. 물론 몸이 훨씬 더 무겁긴 한데, 만약 생각에도 질량이 있었다면 그 무게는 내 몸무게에 내 키의 제곱과 나이와 내가 좋아하는 숫자를 곱한 수보다도 훨씬 컸을 테니까. 최악의 부재를 믿곤 했다. 정말 나쁜 일이 생겨도 그게 최악은 아닐 거야—엄마와 아빠가 싸워도, 그러다 아빠가 나를 때리고 발로 차고 물건을 던져도, 그러다가 엄마가 우리를 두고 떠나도. 동생이 있었으니까. 우리 둘 다 남자니까 사랑스럽다는 말은 좀 이상하고, 눈물 많고 여리고 착한 내 동생. 내 삶의 이유. 그러니까 이건 최악이 아니야—아빠가 동생을 때린다. 동생이 운다. 동생이 담배를 피운다. 흠, 최악인가? 아니야, 최악은 아닐 거야. 그러면 뭐지. 차악인가? 우리는 해가 서서히 드리우는 새벽이 되어서야 옥상에 올라가 숨을 돌리며 저 멀리를 바라본다. 동생은 탁 트인 앞을 보며, 이따금씩 하얗고 형체 없는 구름 비슷한 걸 만들어 코로 입으로 내뿜곤 내게 나지막이 물었다. 형, 여기서 앞으로 쭉 달려나가면 구름에 닿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야, 굳이 안 뛰어도 지금 네 앞에 있잖아, 구름. 네가 지금 만들고 있는 거. 아 형, 그거랑 이거랑 같냐? 키득거리며 엉, 존나 빨리 달리면 닿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너 달리기 빠르잖아. 그랬던 동생은 이제 없다. 최악의 부재를 믿던 내게 친히 반례를 들어 최악의 존재를 증명해주었다. 하염없이 구름을 바라보며 닿을 수 있음을 주장하던 너는 멀리멀리 날아가서 구름에 닿았을까? 기다릴게 여기에서 언제라도 ... 돌아와 기다림의 반대말은 뭐지? 마중인가? 아니면 포기?
비오. 19살, 184cm.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
나는 날고 싶다. 나는 것은 비상. 비상(飛上)과 비상(飛翔). 둘은 같은 날 비飛자를 쓴다. 그렇다면 무엇을 써야 하지.
위 상上. 비상(飛上)은 날아 올라가는 것이다. 다른 힘—바람이든 뭐, 태풍이든 비행기든—에 의해 날아가면 비상(飛上)이라고 한다.
그럼 비상(飛翔)은? 날 상翔에는 깃 우羽가 있다. 그러므로 비상(飛翔)은 날개를 가진 동물이 하늘을 나는 것을 뜻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나는 것, 하늘을 헤엄치는 것. 그게 비상(飛翔)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하늘을 날면 뭐지. 단지 위로만 날아오르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헤엄치는 거니까 비상(飛翔)인가. 아니면 나는 날개가 없으니까 비상(飛上)인가.
그렇지만 나는 의지가 있는데.
헷갈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눕는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다. 자려고 노력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생각이 많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이 복잡하게 얽힌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하얘진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동생이 떠나기 전에도 나를 자주 찾아오곤 했던 너는, 동생이 떠난 이후부터는 동생의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냥 동생 방 침대 쓰라니까 그건 싫다고 꼭 내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는, 혹시라도 내가 허튼 생각을 할까 봐 생각할 틈도 없이 조잘댄다.
나와 동생은 세 살 차이. 너는 나에게, 꼬박 이 년간 슬퍼했으니까 이제 한 살만 더 슬퍼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 생일이 되면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시선을 돌려 창문을 바라본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보인다. 그 빛을 바라본다. 그 빛을 보며 생각한다. 스무 살 생일. 비행기. 하늘. 구름.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동생. 기다림. 미련. 그리움. 보고 싶다. 사랑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네 확정적인 말. 멱살을 잡으려다 만 나의 손. 그 손이 스치려다 말았던 너의 멱살.
... 자냐.
세 살 터울. 세상이 미워서 열네 살에 세상을 떠나 버린, 그렇지만 누구보다 세상을 아꼈던, 정이 많았던, 미련투성이였던 내 동생을 원망하면서도 그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며 이 년을 살았다. 기다리면서 살았다. 살면서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죽은 사람을 이 년째 기다리는 미련 가득한 인간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너는 무슨 생각일까. 너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동생을 기다리는 나를 기다리는 열아홉 살 여자애. 너.
그러다 어느 날, 네가 내게 말했다. 동생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언이었다. 단정이었다. 네가 뭘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데. 하늘 어딘가에서 날아오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직 구름에 도달하기 직전일 수도 있잖아.
울컥 화가 치밀었다. 숨이 막혔다. 세상이 돌았다. 이런 확신이 필요한 거였나.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그런 진부한 진리를 확인사살을 하고 싶었던 거냐고.
그래서 네 멱살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다 말았다. 실은 멱살이 아니라, 너 그 자체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다. 괜히 너한테 화풀이해서 미안해. 근데 이런 나라도 곁에 있어 달라고. 손끝이 스칠 듯 말 듯하다.
네가 옥상에 서서 저 멀리를 바라본다. 새벽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온다. 새벽빛에 물든 네 옆모습은 조각처럼 아름답다. 그런 너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 없다.
티 하나 없이 이렇게나 맑은 너는, 동생을 따라가려던 나를 몇 번이나 구했지. 한 번은 H아파트 옥상에서, 두 번은 여기서, 또 한 번은 학교 옥상에서, 그리고 한 번은...
너는 힘주어 손에 쥐면 부러질 것 같은 가냘픈 발목으로 힘껏 뛰어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왔고, 조금이라도 세게 안으면 으스러질 것 같은 작은 몸으로 나를 붙들고 매달렸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가지 말라고 막았다. 그렇게 네가 나를 몇 번이나 살렸지.
네가 나를 부르면 나는 종종 비행을 망상한다. 하늘을 훨훨 날아 너에게 닿는 것을. 바람을 타고 구름을 스치며 너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함께 비상하는 것을.
그러다 문득, 정말로 날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아홉의 여름밤, 무더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이 밤. 감기기운에 조금 더 용기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간 위에 올라섰다.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심장이 떨어질 것 같다. 발을 헛디뎌 떨어질 것 같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정말로 날 수 있을 것 같다.
뒤에서 네가 나를 붙잡는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네 손을 잡아 내 허리에 두르게 한다. 어설프게, 날개가 달린 것처럼.
네가 울며불며 나를 붙잡아 뒤로 끌어당긴다. 그러지 마, 제발, 하며 낑낑거린다. 강마른 열아홉 여자애 하나쯤 달고서야 한 다리로도 뛸 수 있지만 끝끝내 너를 이기지 못하고 그냥 네 손을 따라, 뒤로 발라당 넘어가준다.
우리는 요란하게 옥상에 엎어진 채로 한참을 누워 숨만 쉰다. 내 뒤에서 나를 껴안고 등으로 넘어진 탓에 너는 그대로 나에게 깔렸다. 무거울 텐데 끝내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손을 탁탁 털고 일어난 너는 내 손을 끌어 그대로 벤치에 앉힌다. 벤치에 앉아있으니 하늘이 더 잘 보인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날고 싶다.
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 네가 날갯짓하는 법을 알 리 없다는 걸. 하늘을 나는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이럴 때면 네가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련하고 고집 세고 눈물 많은,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세상을 아끼던 내 동생.
새벽이면 몰래 옥상에 올라가 구름에 닿을 수 있다고 믿던 꿈 많은 아이였다. 열네 살의 동생은 새벽의 추위 속에 형체 없는 구름처럼 흩어졌다. 너는 아직 열넷의 봄인데, 나는 이제 열아홉의 여름이야.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