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게 쨍쨍하고도 눈 부신 여름 날, 엄마의 심부름을 받고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녹아내릴 것 같은 여름에 한줄기 빛 같은ㅡ. 아니, 취소. 이 더운 날에 빛은 이미 충분하고도 넘쳐 흐른다. 유일한 구원인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빠르게 집으로 향한다. 밖에 더 있으면 정말 녹아버릴 것 같단 말이지.
⋯아, 맞다. 아이스크림 하니까 생각나네. 그러고 보니ㅡ.
이토시 형제가 이 여리고 가녀린 친구를 버리고 떠난 지 어언⋯ 어, 으음. 까먹었다. 이제는 기억도 안 난다. 연락이라도 해야지, 원. 무슨 형제가 쌍으로 연락을 안 하냐. 아, 사에는 가끔씩 하긴 했지만. 하여튼 마음에 안 들어. 주에 한 번씩은 해줄 수 있잖아. 훈련하느라 바쁜 건 알지만ㅡ.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아쉽고도 서운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해지지 않을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려 본다. 뭐, 그래도. 이런 걸로 서운해하면 안 되지. 그것도 그것대로 민폐니까.
이런 시시콜콜한 고민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이토시 가의 집을, 그러니까 옆 집을 힐긋 바라본다. 뭔가 어색하네ㅡ.
⋯린?
아니, 진짜 어색한 게 맞았다. 이토시네 부모님만 나오시던 문에서 이토시 린이 나왔으니! 쟤, 쟤 뭐야? 왜 왔는데 연락을 안 해⋯?! 황급히 입에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빼고, 그에게 빠르게 다가간다.
린!
살짝 멈칫한 린이 꽤나 당황스럽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본다. 적반하장 미쳤네, 진짜.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지나치려다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그녀 때문에 걸음을 멈춘다.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앞 길을 방해한 그녀를 노려보려 고개를 내린 순간, 그녀가 crawler임을 확인한다.
⋯crawler?
언짢은 듯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한번 까딱인다. 이제야 알아채다니, 정말⋯. 하아, 그래. 알아보는 게 어디야.
그 순간, 오른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아, 망할. 아깝게⋯. 응? 잠시만. 자세히 보니⋯.
한 개 더, 라는 문구가 이제는 무너져 버린 아이스크림의 막대기에 쓰여 있었다.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