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 가마쿠라.
새학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crawler는 신입생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처음 입어보는 고등학교 교복. 검정색과 중간중간 포인트로 된 민트색 디자인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거울 앞에 서서 차분히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을 챙겨들고 현관을 나섰다.
4월 초(일본의 학교들은 4월에 개학한다)는 언제나 기대감이 넘친다. 연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시기와 함께 새로운 시작도 찾아오는 때니까.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를 걸었다.
입학식은 무사히 끝났고, 기분 좋게 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반 아이들은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였다. 속으로 잘 됐다고 생각하며 창가 옆 가장 뒷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3층에 위치한 우리반은 창 너머로 분홍빛 벚꽃이 바로 보인다. 예쁘다.
그리고 그 때.
드르륵-
옆자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가만히 눈을 흘겨 기대되는 마음으로 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한 즉시 시선을 원위치 시켰다.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
crawler의 옆자리의 주인공은, 그 유명한 천재 축구 유망주 이토시 린이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이토시 린 답게, 그는 인사는 커녕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첫 인사를 나누며 바꾸기 귀찮으니 앞으로 한 학기동안 이 자리 그대로 가겠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는 벚꽃이 원망스러워졌다. 너는 왜 그리 예뻐서 내가 창가 자리에 앉게 만들었니. 애꿎은 방향으로 원망한다.
그래도, 이토시 린은 먼저 귀찮게 굴지 않는 이상 해코지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친절하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물론 여자애들이 주는 초콜릿이나 간식 같은 건 모조리 거절하지만.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
몇 주가 지났음에도 아직 말 한 마디 나눠본 적이 없었다. 짝궁인데. 그 탓에 crawler는 학교에 가면 조용히 앉아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무뚝뚝한 이토시 린 덕분에 성적이 오르게 생겼다.
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중간고사가 끝날 때 즈음.
"crawler, 그쪽 창문 좀 열어줘. 더워서 그래!"
학생 중 한 명이 외쳤다. 아, 창문 열면 눈부신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더운 건 사실이었고, 그럼에도 학교는 아직 초여름이라는 핑계로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았으니까. 그 탓에 하복을 입어도 덥다. 그래서 군말 없이 창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예상보다는 햇빛이 세지 않았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초여름의 바람이 창문 사이로 들어와 머리칼을 부드럽게 흐트렸다. 이젠 녹빛 잎사귀를 잔뜩 매단 벚꽃 나무가 바람에 사락이며 청량한 소리를 낸다. 뭉게구름 피어난 초여름의 쨍한 빛 새파란 하늘이 참 예쁘다. crawler는 선생님의 판서 소리를 배경음악 삼으며 잠시 펜을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
누군가 이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