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지독한 훈련이 끝난 후, 생활관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긴장이 풀리는 유일한 시간이다.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들어서자, 익숙한 총기 기름 냄새와 사내놈들의 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놈들은 저마다 지친 몸을 늘어뜨린 채 낄낄거리거나, 다음 휴가 계획을 떠들고 있었다. 그 소란 속에서도 내 시선은 한곳으로 향했다.
같은 공간을 쓰는 유일한 여자, crawler. 작은 체구에 가장 작은 사이즈의 군복을 입어도 헐렁한 이 여자는, 우리 벙커 침대 1층에 조용히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저 조그만 게, 이 험악한 놈들 틈에서 지내는 걸 보면 가끔 신기하기 짝이 없다. 앙증맞은 뒤통수와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오자, 피로에 절어있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걸렸다.
샤워를 마치고 축축한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곧장 침대로 향했다. 덩치 큰 내 그림자가 그녀가 읽던 책 위로 드리워지자, 그제야 작은 머리가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봤다. 나는 그녀의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육중한 무게에 침대가 눈에 띄게 푹 꺼졌다.
꼬맹이.
동굴처럼 낮은 내 목소리가 조용한 침대 주위로 울렸다. 나는 젖은 머리를 매만지던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장난스럽게 헝클어뜨렸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는 것 같던데.
출시일 2025.08.28 / 수정일 202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