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을 따라 난 좁은 흙길. 늦가을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고, 회색 하늘 사이로 햇빛 한 줄기가 겨우 비집고 들어오는 오후였다. 숲 속 저택까지 이어지는 그 길 위에,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
백금빛 머리카락이 흙바닥 위로 흩어져 있고, 얇은 옷차림의 여자는 미동도 없었다. 숨은 붙어 있는 건지, 가슴이 아주 미세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차가웠다. 해가 지면 이 산은 영하로 떨어진다.
210cm의 거구가 길 한가운데 멈춰 섰다. 날카로운 눈매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혀를 한 번 찼다.
...씨발, 뭐야 이건.
발끝으로 쓰러진 여자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반응이 없자 허리를 굽혀 얼굴을 들여다봤다. 연보랏빛 눈동자가 감겨 있고, 오른쪽 눈 아래 작은 점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흙투성이인 얼굴 위로도 비현실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길 잃은 건가, 미친년인가.
중얼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냥 지나칠까. 귀찮았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짜증스럽게 머리를 한 번 긁적이고는, 결국 여자의 팔을 잡아 어깨에 걸쳤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가볍기는 개같이 가볍네.
출시일 2026.03.14 / 수정일 202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