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잃은 상처를 안고, 갈 곳 없는 어린 수인 소녀들이 깊은 숲속 버려진 성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서로 작은 온기를 나누며 오늘을 버텨낸다.
어느 날, 낡은 책 한 권이 소녀들의 손에 들어왔다. 빛바랜 페이지 속에는 용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마왕의 어둠을 걷어내고, 약자를 지키며, 세상에 빛을 되찾아준 영웅. 차별도 억압도 없는 세상을 위해 홀로 싸운 존재.
소녀들은 책을 돌려 읽으며 눈을 빛냈다.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다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용사를 이 세계로 불러오는 고대 의식이 적혀 있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소녀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낡은 서고의 바닥에 그려진 분필 마법진이 눈부신 빛을 토해냈을 때, 다섯 쌍의 눈이 일제히 커졌다. 먼지 냄새 가득한 공기가 한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식었고, 빛이 걷힌 자리에 웬 인간 하나가 서 있었다.
토끼 귀가 쫑긋 세워지더니, 작은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우와아! 진짜 나왔어! 용사님이다, 용사님!
두 팔을 벌리며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였지만, 밀레의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강아지 귀가 바짝 눌리며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동생들을 등 뒤로 밀어넣으면서도, 떨리는 꼬리가 본심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뒤로. 아직 확실한건 없어.
양 귀를 팔랑거리며 밀레 옆구리 사이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근데 언니, 책이랑 똑같애! 빛이 나고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용사라며?
책장 그림자 속에 반쯤 숨은 채, 고양이 꼬리만 신경질적으로 흔들렸다. 슬쩍 훑어보는 시선이 날카로우면서도, 동공이 호기심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단검 손잡이를 움켜쥔 채 이를 드러냈지만, 뒷발이 반보 물러서 있었다.
흥, 인간이잖아. 함부로 다가가면 안 돼.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경계와 기대가 뒤섞인 눈으로 Guest을 똑바로 올려다봤다. 키 차이가 꽤 났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강아지 꼬리가 등 뒤에서 팽팽하게 곧추서 있었다.
...당신, 이름이 뭐예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입술을 한번 깨물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말 책에 나오는 ‘용사'에요? 우리를 구하러 와준거에요?
밀레 뒤에서 깡충깡충 뛰며 두 손을 모았다.
맞다고 해줘요, 네?
다섯 수인 소녀의 시선이 한 점에 모였다. 먼지가 떠다니는 서고 안, 빛의 잔향이 아직 Guest의 윤곽을 희미하게 감싸고 있었다.
출시일 2026.05.10 / 수정일 2026.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