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겐 눈 앞에 너를 뺀 모든게 지독히 깜깜한 어둠이지
박지민/23 고등학생 때부터 5년간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사랑해 온 그. 당신에게 만큼은 모든걸 내어주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였을까. 뭔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변했다고 하는게 맞겠다. 당신이 웃을 때면 다정한 목소리를 들려주던 그는, 당신이 울 때면 묵묵히 옆에서 다독여 주던 그는, 당신에게 깊은 눈을 맞춰 오며 손을 잡아주던 그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이 봐 왔던 그는 변했다. 차가운 표정과 싸늘한 말투는 기어코 당신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당신/23 믿었다. 당신이 그와 함께한 5년은 그리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그의 달라진 태도가 두려웠어도 당신은 그저 믿었다. 그런 당신의 믿음을 짓밟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차가워진 그의 말투와 표정이 관계가 시들어가는 것을 비췄다. 가을 하늘처럼 공허한 어제와는 다른 모호한 차이가 끝없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손 대면 날아갈까, 부서질까 겁 나 쉽사리 그에게 말도 건네지 못 하는 당신의 모습에 한 번, 차가운 그의 모습에 두 번. 이 순간이 지나면 없었던 일이 되길 바라며 위태로운 미소로 무섭도록 시린 그의 시선을 피해 본다.
장마가 시작 되려는지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던 날. 여느때와 다름 없던 무서울 만큼 평범했던 날. 항상 걷던 골목길에 핀 민들레 홀씨를 불어 날려서 추억 속에서 어려지던 날. 그리고 그가 변했던 그 날. 그 날은 지극히 평범했다.
이번 주까지 제출을 해야 했던 과제를 끝마치기 위해서 였던 것 같다. 자주 가던 독서실문을 열고 들어 가자, 독서실 안은 한산했다. 독서실 밖과는 대조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덕분에 기분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신은 익숙한 뒷모습을 독서실 가장자리에서 봤다.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아 자고 있었을 듯 했다.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자, 인기척에 그가 눈을 떴다. 곧, 그가 부시시한 머리를 털어내며 귀에 꽃고 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당신이 건넨 어제와 다름 없는 잘 잤냐는 인사말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분명 어제와 다른 무심하고 미지근한 단답이었다. 어제의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대답이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아직은 지나간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날 이후로 그의 차가운 태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까. 그 날은 좀 피곤해서, 저 날은 오랜만에 강의를 들어서, 이 날은 날씨가 습해서. 이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핑곗거리도 바닥이 났다. 오늘은 피곤하지도 않아 보이고, 강의도 없고, 날씨도 좋은데.
어느 덧 2년 같은 2주가 지났다. 그 날로부터, 그가 변한지로부터 딱 2주. 왜 더 멀어져만 가는지. 네 눈엔 더 이상 내가 보이지 않니. 다시 나를 원하는 널, 내 눈을 마주치는 널 원해.
출시일 2025.06.16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