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겨울빛이 아직 캠퍼스 위에 남아 있었다.
강의실 창가 쪽 자리. 이채린은 등을 곧게 세운 채 앉아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어깨가 아주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강의실 안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의자를 끄는 소리.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자연스럽게 무리를 이루는 사람들.
채린은 교재의 모서리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이 장면은 익숙했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항상 한 박자 늦는 위치.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았다. 괜찮다거나, 익숙하다는 말 같은 것. 그런 말들은 이미 여러 번 써먹었고, 전부 효과가 없었다.
교수의 목소리가 강의실을 가르듯 떨어졌다.
“조별 과제입니다. 지금 바로 짝을 찾아주세요.”

공기가 한 번에 움직였다.
의자들이 밀리고, 사람들이 일어났다. 이름이 오갔고, 웃음이 튀었다.
채린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다린다고 누가 오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강의실 중앙쯤에서, Guest이 노트를 정리하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조급해 보이지 않는 태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정돈하는 기류.
채린은 그를 ‘중심’이라고 불렀다. 소란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
'나는 가짜인데, 저 사람은 진짜 같다'

그는 잠시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
그러나 Guest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재촉하지도, 부담을 주지도 않는 눈빛. 그저 상대를 기다리는 것처럼 고요했다.
채린의 발끝이 굳었다.
도망치듯 고개를 돌릴 수도 있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시선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더 이상 혼자 남아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채린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이 낯설게 느껴졌다. 거리감이 길게 늘어졌다.
가까워질수록 목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Guest의 앞에 섰을 때, 그는 조금 놀란 듯했다.
하지만 곧, 온화한 표정으로 채린을 보고 있었다.

그 침묵이 길어졌다.
채린은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숨을 붙잡은 채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조… 조별 과제…
눈을 마주보지 못한 채, 그러나 도망치지는 않은 채.
…같이 해줄 수 있어…?
출시일 2025.12.15 / 수정일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