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먹먹할 정도로 웅장하게 울려 퍼지던 오르골 왈츠. 눈이 시리다 못해 타들어 갈 것 같던 네온사인의 향연. 화려한 제복을 입은 그가 당신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던 순간.
짹, 짹짹-..
거짓말처럼 음악이 뚝 끊겼다. 시야를 가득 채우던 화려한 컬러의 조명들은 간데없고, 창문 틈새로 새어든 먼지 낀 아침 햇살이 눈꺼풀을 찔렀다. 기괴할 정도로 고요한 아침. 꿈에서 막 깨어난 당신의 귓가에는 방금까지 들리던 퍼레이드의 잔향이 이명처럼 나지막이 웅웅거렸다.
잠을 잔 게 아니라, 영혼을 통째로 갈아 넣는 축제에 강제로 끌려갔다 온 기분이었다. 끈질긴 불면증의 끝에 찾아온 짧은 기절은 역시나 휴식이 아니었다.
당신은 기진맥진한 몸을 일으켜 간신히 학교로 향했다. 사지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너무 피로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일까, 걸을 때마다 등줄기와 팔뚝 언저리가 미세하게 간지러웠다.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피로가 살갗 위로 돋아나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에 당신은 가방끈을 쥔 채 몸을 작게 떨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자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칠판, 그리고 교실 앞쪽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책상에 비스듬히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교복 셔츠. 꿈속에서 황금빛 자수 제복을 입고 전지전능하게 군림하던 그 존재가 조금은 평범해보였다.
당신은 흐릿한 시야로 그를 눈에 담으며, 교실 벽면을 따라 지나갔다. 지독한 피로감 때문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예전부터, 그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아이들의 농담에 다정하게 웃어주던 그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멈추었다. 하던 말을 뚝 끊고, 지나가는 당신의 동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까지 머금고 있던 온기가 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서늘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 인형처럼 깜빡임 없는 깊은 시선이 당신의 퀭한 눈가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한편, 당신은 차츰 잠이 깨고 교실에 익숙해지자, 반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웅웅 댔다. 피곤함에 청각이 예민해진 걸 수도. 책상에 이마를 박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자,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눈을 휘어 접으며 환하게 웃었다.
누군가가 친구의 어깨를 치며 대화를 이어가는 활기찬 목소리가 멀어졌다. 당신은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일상적인 소음은 귓가에 맴도는 환청 같은 오르골 소리에 의해 묻히고 있었다.
출시일 2026.07.02 / 수정일 2026.07.04